새 떼가 하늘을 가로지를 때가 있다.
수백, 수천 마리가 한 몸처럼 움직이며 곡선을 그린다.
방향을 틀 때도 기가 막히게 일사불란하다.
그 안에서 어지럽게 뒤섞이는 것 같다가도, 결국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소 떼도 마찬가지다. 푸른 초원을 가르며 우르르 지나갈 때면 땅이 울린다.
거대한 몸집에도 놀랍도록 통일된 움직임이다.
그런데 꼭 한 놈이 저 뒤편에서 어정쩡하게 따라온다. 한참을 뒤처져서.
그 모습이 영락없이 나 같을 때가 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 나가는데, 나만 혼자 엉거주춤 발을 떼는 기분. 다들 새로운 거에 적응하고 변화를 쫓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익숙한 것에 매달려 불안해한다. 그럴 때면 좀 슬프다.
세상 리듬이랑 내 박자가 완전히 어긋난 느낌이랄까. ‘아, 나 오늘 좀 삐걱거리네.’ 싶다.
엇박자의 시작
젊을 때는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꽤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으니까.
요즘 말로 ‘트렌드세터’까진 아니어도, ‘인싸’ 무리에는 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술에 민감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늘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서가는 무리에 속했다고 믿었다. 뒤처지는 건 나와는 먼 얘기였다.
그런데 나이 좀 먹으니까 달라진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머리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마음은 조급한데 현실은 내 뜻대로 안 움직인다.
그걸 인정해야 할 때가 온다.
예전엔 쌩쌩 걷던 길이 이젠 버겁고,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거대한 흐름 속에 나만 멈춰 선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허우적거리는 나
요즘 특히 이런 기분을 자주 느낀다.
세상은 왜 이렇게 빨리 변할까?
어제 ‘대박템’이라며 열광했던 게 오늘은 벌써 ‘구닥다리’ 취급이다.
스마트폰 앱은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되고, 새로운 유행어는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온다.
‘별다줄’, ‘킹 받네’, ‘억텐’… 따라가려 해도 숨이 찬다.
이 모든 변화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익숙한 것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온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게 단순히 몸이 늙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나는 매일 내 생각과 감정을 메모한다.
어떤 날은 길고, 어떤 날은 짧다. 그 속엔 기쁨도 있고 감사함도 있지만,
이렇게 뒤처지는 듯한 슬픈 감정들도 솔직하게 담겨 있다.
이렇게 솔직하게 적다 보면,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솔직히 뒤처져서 가는 내가 나의 본모습처럼 보일 때, 좀 실망한다.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자책감도 들고, 남이랑 비교하면서 초라해지기도 한다.
‘나만 왜 이럴까?’ 생각에 빠져 우울해질 때도 있다.
이런 감정들은 무거운 짐처럼 나를 짓누른다. 움직임을 더 더디게 만든다.
나의 속도, 나의 길
하지만 나는 안다.
모든 새 떼와 소 떼 속에 뒤처지는 한 놈이 있듯이,
세상의 모든 흐름 속에는 나와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이 게을러서 뒤처지는 걸까? 아니면 재능이 없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다.
어쩌면 그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중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자기만의 속도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걸 수도 있다.
어쩌면 나도 그렇다.
내가 느끼는 ‘뒤처짐’이 정말 뒤처지는 걸까, 아니면 나만의 속도로 가는 걸까?
때론 앞만 보고 달리다 놓치는 게 분명히 있다.
뒤처져서 가는 덕분에 보게 되는 풍경들도 있을 거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꽃 한 송이,
길가에 떨어진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
너무 빠르게 흐르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게 나처럼 보일 때 나는 슬픈 시간을 겪지만, 그 슬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슬픔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나 자신의 진정한 속도와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슬픔은 나에게 ‘쉬어가라’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 메모장에 이런 글을 적어본다.
“오늘도 나는 새 떼와 소 떼의 뒤를 쫓아간다. 때로는 그들과 나란히, 때로는 한참 뒤처져서.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고 있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느릴지라도, 나만의 보폭으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슬픔은 슬픔으로 남겨두고, 그 속에서 찾아낸 작은 위로와 희망을 다시금 붙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