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결혼을 일찍 해서 벌써 아이가 돌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남학생들이 많이도 따라붙었다.
대학 들어가자 바로 애가 생겨 버려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랜만에 정장을 빼입었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시골 버스정류장에 앉아 고요한 오후를 맞았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나른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버스 소리가 들려올 때쯤이었다.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 버스 어디 가는 버스여?"
주름 가득한 손이 가리키는 버스 번호를 보니, 어라?
"어르신, 너릇바위마을 가는 건데요. 저랑 같이 타시면 돼요."
이런 우연도 참 재미있다.
어릴 때는 그저 '어, 내가 탈 버스네!' 하고 끝냈을 인연인데
이제는 작은 우연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렇다고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건 아니다.
아직도 모르는 게 훨씬 많다.
나이 들면 모든 게 서사가 되는 마법.
생각해 보면 참 별거 아닌데 말이다.
버스가 도착하고,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창밖 풍경은 느릿느릿 흘러갔다.
버스 안은 엔진 소리 외엔 별다른 소음이 없었다.
그 고요함 속에, 할머니가 주섬주섬 보따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봉지 속에서 드러난 건 푸릇푸릇한 파 한 단이었다.
할머니는 그 파를 내게 내미셨다.
"아이고, 도시서 오신 분인가 본데, 이거 가져가서 맛있는 거 해 먹어.
시골에서 직접 키운 거라 농약도 안 쳤어."
예상치 못한 선물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파 한 단을 받아 들자니, 정장 차림에 파를 들고 가는 내 모습이 좀 웃길 것 같았다.
게다가 버스에서 내려 좀 걸어야 할 판인데, 들고 가기도 불편할 게 뻔했다.
한편으론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스쳤다.
안 받자니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갔다.
이거 완전 MZ 마인드인가?
대학생 때 정도만 됐어도 아마 단칼에 거절했을 거다.
"아이고, 할머니 괜찮아요. 제가 들고 가기 불편해서요."
효율성과 체면이 우선이었던 그때의 나는,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만드는 일을 극도로 피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곧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그건 곧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할머니의 파 한 단에 담긴 깊은 의미를 헤아릴 줄 몰랐겠지.
그저 눈앞의 불편함과 어색함만 보였을 거다.
'왜 갑자기 나한테 파를 주지? 이거 받아도 되나? 내가 뭘 드려야 하지?' 같은 실용적인 고민만 했을 테니.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나는 내 안의 '딱딱한 각'들을 조금씩 둥글게 깎아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주는 '당혹감'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의외의 기쁨'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손에서 파를 건네받는 순간, 정장에 파 한 단이라는 기묘한 조합이 주는 '어색함'이 나를 감쌌다.
버스 안의 몇몇 시선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저 아가씨는 왜 정장 입고 파를 들고 있지?
설마 파값 흥정했나?' 같은 궁금증 가득한 눈빛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그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파 한 단을 받아 든 내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행복감이 차올랐다.
그건 아마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일 거다.
한평생 농사지으며 자식들을 키우고, 세상 풍파 다 겪으신 할머니의 삶이
그 파 한 단에 오롯이 담겨 있는 듯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나눔.
팍팍한 도시의 삶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중한 가치였다.
왠지 모르게 뭉클해졌다.
결국, 나는 정장에 파 한 단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친구가 마중 나와 있었는데,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너 지금 어디서 김장하고 오는 길이냐?
아님 어디서 파전이라도 부쳤냐?" 실없는 농담에 나도 웃음이 터졌다.
가는 길 내내 그 파를 소중히 들고 갔다. 어색함은 곧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그래, 나는 지금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들고 가는 중이야!'
마치 내가 거대한 우주의 한 조각을 들고 가는 듯한 뿌듯함이었다.
친구에게 파를 건네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파 한 단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삶의 유연성'일 거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지혜 말이다.
그리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때로는 계산 없이 타인의 온정을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기꺼이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팔팔하던 때는 'Give & Take'를 철저히 따졌지만,
이제는 'Give & Give'가 주는 충만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이 나이쯤 되면 'Take' 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다.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와 파 한 단은 삶의 소박한 진실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정장에 파 한 단'이라는 부조화 속에서,
내 마음은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나는 이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삶이 던져주는 작고 소중한 선물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파 한 단이 주는 행복처럼, 계산 없이 베풀고 받는 것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알아가는 것.
그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