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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

by 정희승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의 연속이다.


새벽에 일어나 현이 아침을 차리고 청소기를 돌리며 빨래를 한다.


빨래가 끝나면 대충 집정리를 한 후 남편 회사로 출근한다.


이번에 납품받은 신발은 다행히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하루살이처럼 전전긍긍하던 남편은 힘들어도 힘이 난다.


찔끔거리던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니 매일 하는 야근에도 남편 얼굴은 밝아 보인다.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을 위해 나도 보탬이 돼야 한다.


석이 축구장 가는 오후 4시 전까지 손 빠른 아내는 출고에 큰 도움이 된다.



"벌써 다 했어?"



선글라스 포장하고, 신발 포장하고, 송장 붙인 박스는 어느새 벽에 가지런히 쌓여간다.



"역시 당신 손은 빨라."



손 빠른 나는 신이 나서 더 빠르게 움직인다.


손이 빨라야 남편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고,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늦은 저녁이라도 함께 먹고 싶어진다.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척척 박스를 쌓아가고 있을 때 친정 전화가 울린다.



"바쁘냐? 오늘 네 아빠 안과 가는 날이다.

핸드폰 만지는 것도 자꾸 잊어버리는 아빠 혼자 보내기 불안한데, 네가 와줬으면 좋겠다.

잠깐 와줄 수 있냐?"



"저 회사예요."



"알아. 점심시간은 있을 거 아니냐."



잠시 정적이 흐른다. 가고 싶지 않아 대답 없는 나와 대답 없는 딸이 못마땅한 엄마가 대립하는 시간.



"싫으면 됐다. 허리 아픈 나라도 가야지."



불효막심한 딸 때문에 허리 아픈 엄마가 움직인다는 총알을 던지고 엄마는 전화를 끊는다.



"하..."



느려진 손을 보며 남편이 말한다.



"내가 다녀올게."



남편은 모른다. 아빠와 단둘이 있는 공간을 피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나처럼 그도 덮어 두고 있으니까.


덮어 둔 기억을 들추고 싶지 않으니까.


밀린 출고를 끝내고 일찍 퇴근해서 그와 시원한 맥주 한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손을 움직인다.


출고할 박스가 거의 다 쌓여갈 무렵 남편은 도착했다.



"별일 없었지?"



"응. 장인어른 괜찮아 보이던데?"



치매 초기는 부모에게 일어나지 않은 모든 상황을 상상하고 재연될 것처럼 만들었다.


핸드폰 터치가 어설퍼도 치매이고 잠꼬대하고 기억 못 해도 치매였다.


산책 갔다 집을 못 찾을까 봐 걱정되어 현관문을 열지 못한다.


치매도 걱정인데 코로나라니.


뉴스에서는 코로나로 죽었다는 요양원 기사가 매일 나오고 있다.


얼마나 불안한 세상인가, 치매도 무서운데 코로나까지 걸리면 어쩌란 말인가.


부모는 불안하고 무서운데 무덤덤한 딸이 야속했을까.


일하다 말고 장인어른을 모신 사위에게 고맙다는 전화 한 통 없던 엄마는 다음 날 아침 전화했다.



"어제 너무 속상해서 잠 한숨 못 자고 전화하는 거다.

양서방 눈깔이 왜 그러냐?

현관에서 나를 보는 눈이 경멸하는 눈이었다.

장모 무시하는 거냐?"



"무슨 말이에요.

그이가 엄마를 왜 무시해요."



"예전부터 맘에 안 들었어.

무뚝뚝해가지고. 표정도 없고.

뭐가 그리 잘났어?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

도대체 왜 그래요?

일하다 말고 달려간 사위한테 그게 할 소리예요?

엄마 인생에 감사란 단어는 없나요?

불평, 불만, 남 탓이 전부예요?"



"그래!!

감사할 게 있어야지 감사하지.

지남편 흉 좀 봤다고 어디 엄마한테 너는 그게 할 소리냐?

싸가지 없는 년."



엄마 혀가 칼로 변한 건 언제부터였더라.


예쁜 말을 한 적은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말 중에 감사, 사랑, 따뜻함을 느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쁜 남자와 사는 인생이 고달파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이어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해라는 건 어디까지 해줘야 하는 걸까.


이사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30평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을 때도 그랬다.



"네 까짓게 무슨 30평이냐.

분수에 맞게 살아."



네 까짓게, 네 주제에.


한동안 주제 파악도 못하고 까부는 인생이 된 것 같았다.


부모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매번 밟기만 하는 엄마가 밉고 또 미웠다.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결혼 전, 엄마와 다정했던 순간만큼 전쟁같이 싸웠던 순간이 더 많았던 기억들.


논리적으로 말하면 손찌검부터 하던 엄마에게 따귀 맞는 건 일상이었다.


욕하고 때리는 엄마 혀는 언제나 칼이었다.


오빠들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던 칼 같은 말은 늘 딸에게만 향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퇴근한 남편과 맥주 한잔 하며 말을 꺼냈다.



"여보, 나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



아빠 성추행을 고백하고 부모를 버려야 할 때가 왔다고 내 안에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다.


그런 나를 남편은 말린다.



"그냥 참고 살자.

어머님 말 무시하고 아버님 병원은 형님들한테 같이 하자고 말해.

당신 혼자 너무 애쓰니까 힘들어서 그래.

잘 못 되면 당신이 감당하기 더 힘들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가 걱정하는 상상, 일어난 적 없는 그 상상 때문에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참기 힘들다.


늙어가는 자신을 봐달라고 매달리는 아빠도, 날이 갈수록 말이 아닌 칼을 뿜어대는 엄마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덫을 놓고 나를 조정하려는 그들에게 벗어나고 싶다.


숨이 막힌다. 가슴이 조여 온다.


그들의 올가미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나를 구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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