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연애 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08.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첫 연애면서도 장기연애였다. 20대 후반에 시작한 나의 첫사랑은 3년을 넘도록 변함이 없었지만, 상대의 마음은 달랐는지 결국 우리의 결말은 이별로 끝이 났다. 헤어졌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마치 그가 없는 이 앞의 내 삶이 살아갈 가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나날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사이 새로운 만남이 내게 찾아왔다. 연애 쪽은 아니지만, 드디어 1년이 넘어가는 공백기 끝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와 이전 경력을 다 버린 신입으로서 이 불경기에 어찌어찌 새로운 회사에 몸 담게 된 것이다. 정말 기적적이라고 밖에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 뿐이다.
신기하게도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이 회사의 합격소식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낡고 지친 것은 가고, 새롭고 두근거리는 일이 찾아와서 나로서는 이별을 극복하기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별 초기에는 그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 아쉬움에 눈물이 났고, 그 후에는 우리가 함께한 3년간의 추억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극심하게 느끼던 그리움은 어느새 분노와 배신감으로 변했고, 그것마저도 오래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을 좋은 추억으로 삼기로 받아들이는 상태로 수렴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우리는 너무나도 애틋했던 시절인연이었고, 인연의 끈이 여기까지였던 것일 뿐, 그때의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한 사진을 보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지만 이제는 사진을 봐도 이때의 나는 참 사랑이 가득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사진을 본 감상에 그가 빠지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좋은 신호인 것 같다.
이전 연애에서 내가 서툴었던 것은 그를 너무 사랑해 눈에 보이는 갈등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 헤어질까 두려워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결혼을 회피하는 그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나 또한 그 사실을 외면한 것.
모든 것이 그를 너무 사랑했고, 그 관계를 지키고 싶었던 탓이다.
그래도 한 번쯤 이렇게 사랑을 가득 주고 또 받은 연애를 해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이 많아서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 사랑이 다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음 사람은 내 넘쳐나는 사랑을 당연하게 혹은 귀찮게 여기는 사람이 아닌 그 넘쳐흘러내리는 사랑마저 사랑스럽게 보듬어주는 사람을, 고마움을 제때 느낄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연애에 후회는 없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이 먼저 식어버린 것은 상대였기에 아쉬움은 남지만, 미련은 없다. 나는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 대한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랑을 알게 해 준 그에게 마지막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