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이긴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람은 모두 달라서 사랑의 의미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어떤 보편적인 사랑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의미에 대해 막연하게 동의하는 그 무엇이 있긴 하다. 그래도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은 너무나 다른데..
육식동물과도 같은 남편과 초식동물과 비슷한 나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지만,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을 덜 사랑한다고 여긴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그래서 날마다 부족하고 목이 마르다. 그래도 이게 내 사랑인 걸 어쩌란 말인가.
육식동물인 호랑이가 사슴에게 커다란 생고기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사슴이 기뻐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호랑이는 기뻐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말한다. 전혀 기쁘지 않은데... 서운해하는 호랑이를 보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짜증도 난다. 호랑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기뻐하는 척도 못하는 나 자신도 참..
언제나 내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을 준비하고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했다가 내 적나라한 반응을 보고 실망하고 토라지는 남편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이젠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말하지만 아마도 시간이 좀 지나면 또 뭔갈 준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호랑이의 사랑이라면 또 할 말도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지.
알고 보면, 나는 온 세상을 품는다고 하면서 단 한 사람도 품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냥 그런 나도 나다. 그런 나라도 나는 좋다.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일기도 썼고, 엄마랑 통화도 했고, 아침엔 찌개도 끓여놓고 나왔다. 그리고 학교에 일찍 와서 브런치를 쓰며 차를 마시고..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 기분 좋은 순간. 물론 얼마 안 가 무너질 수도 있지만, 이 순간을 그대로 즐기자.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부럽지 않고,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은 충만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살 맛이 나는 순간이다. 힘든 일이 많아도,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럽다가도 또 이런 순간이 오니까 인생이 살만한 것 아닐까.
집에 있는 호랑이도 이런 순간을 느꼈으면 좋겠다. 인생의 행복을 소소하게 누리며 살길. 나는 남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그를 사랑한다. 이게 나의 사랑인 걸 그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