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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네 Jul 05. 2024

쎄함은 과학이로다

   사십사 년 인생의 빅데이터. 내 모든 직, 간접 경험의 총합. 뭐라 정확히 근거를 댈 수는 없으나 이 모든 자료들의 조합이 은근하고 찜찜하게 내뱉던 비상 신호. '쎄~함'이 내 아이를 살렸다.


   어느 퇴근길이었다.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엄마 언제 오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배 아프고 머리 아프고 기침하는 일쯤이야 아이 기르다 보면 익숙하고도 흔한 일이라 그저 오늘은 어리광을 좀 부리나보다 했다. 잘 쉬고 있으라며 대수롭지 않게 통화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평소 엄살이 많지 않은 아이가 자리를 깔고 누워 있다. 열이 38도를 오르내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배가 아프다... 암만 봐도 그냥 괜찮아질 것 같지는 않아 바로 아이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를 향했다.


   현재 상태를 전해 듣고 진찰을 한 의사는 장염이 의심된다며 부드러운 것만 먹이라는 조언과 함께 이런저런 약을 지어줬다. 식욕 없는 아이를 채근해 가며 겨우 한술 뜨게 하고 지어온 약을 열심히 먹여보았지만 구토, 설사, 발열 등 아이의 상태는 오히려 악화될 뿐, 나아지질 않았다. 무슨 장염이 이리 독하담 하며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라며 코를 찔러 검사를 하고, 입안이 온통 헌 것을 보여주며 수족구 아닌지 앞으로 잘 지켜보란다. 의사에게 아이가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한다니 "배가 아플 거예요 엄마~"라는 동어반복으로 아리송한 대꾸를 한다. 지사제와 해열제, 항생제가 추가된 새 약꾸러미를 받아 들고 일단은 코로나도, 수족구도 아닌 듯 하니 다행이라는 말로 아이에게 인지 스스로에게 인지 모를 위로를 건네며 돌아왔다.


  이상하다. 아이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여전히 열이 잡힐 듯 말 듯 오르락내리락했고, 지사제 덕분에 설사는 멎었지만 반대로 똥이 누고 싶은데 나오질 않는다 했다. 입맛이 전혀 없어 음료수만 마시겠다 했고 무엇보다 배에 손을 대면 아프다고 기겁을 했다. 그래도 흰 죽을 쑤어주니 제법 먹기에 드디어 나으려나보다 안심하며 처방받은 마지막 약을 먹인 다음날 아침. 손으로 대충 짚어봐도 뜨뜻한 아이의 체온을 재어 보니 39도 전후. 불쾌한 쎄함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이상해... 장염이 이렇게 여러 날 약을 먹어도 낫질 않다니. 일단 큰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보자!'


   며칠째 아파서 기운이 없는 데다가 새로운 병원에 가보자니 혹시 자기에게 큰 병이 생긴 건가 싶어 덜컥 겁을 먹은 아이에게 '사실은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혹시나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봐 두렵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과장되게 씩씩하게 굴며 아이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그렇게 천 가방에 핸드폰과 마스크만 덜렁 넣고 샌들 꿰어 신은 채 버스 타고 찾아간 그 병원에서 내 아이는 목숨을 건졌다. 0.5 이하여야 할 염증 수치가 16. 충수가 터진 지 이미 여러 날이라 뱃속이 온통 고름으로 뒤덮인 응급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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