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를 오랫동안 알았으나 정말은 '잘' 알지 못한다. 1933년부터 2022년까지 사셨고 1980년에 내가 태어났으니, 세상을 약 90년 사셨고 나랑은 42년 정도 아빠와 딸로 지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집안 재산을 사업과 주식으로 탕진하고, 일도 안 다니는 처지에, 술만 마시면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는 악당'으로만 알았다. 악당으로부터 엄마를 지키는 것이 어린 나에게 있어 가장 중대한 임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혼자 받아 들)였으며, 남편에게 정서적, 경제적으로 기댈 수 없었던 애처로운 엄마를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것이 내 삶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렇게 일찍 철이 들었던 덕에 당시 나로서는 최선이자 최상이었던 학업 성취도로 엄마의 고생을 보상하였고 끊임없는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착하고 돈 안 드는 기특한 딸'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악당은 때로 다정했다. 다 큰 열 살짜리가 밤새 이불을 적시고 축축한 불쾌감에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무서웠고 아빠는 무심했다. 엄마 몰래 구원을 청하는 나에게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불 바닥이 위로 올라오게 뒤집어 주고는 "이러면 감쪽같아" 하고 도로 쿨쿨 주무셨다. 어쩔 수 없는 지린내에 결국 엄마한테 들켜 혼이 나긴 했어도 발각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 아빠의 그 덤덤함은 고마운 피난처였다. 결혼하고 따로 살게 된 후에는 밤새 앓고 난 아침에 꼭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꿈에 니가 힘들어 보이던데 아픈가 싶어 전화해 봤다고, 정말 신기하리만치 정확하게 나의 고통을 감지하여 연락을 하셨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나 봐'라고 많이 늦게 깨달았다. 아빠가 악당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인지 어리둥절해하긴 했지만 '엄마에게 나쁜 남편'인 것과 '자식에게 나쁜 아빠'인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고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아빠를 좀 알게 된 것 같다고 느낀 건 돌아가실 무렵이었다. 아빠는 '내 집, 내 방'에서 눈을 감기를 원하셨고 엄청난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병원이 아닌 집에서 자연사의 형태로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요란하게 싸우고 미워하던 두 사람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보았으며, 온몸이 아파 병원을 순례하는 것이 일상이던 노인이 더 늙은 노인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보았다. 아빠는 점점 드실 수 없게 되었고 점점 말라갔으며 자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아빠 방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는데 그날 잠시 의식이 돌아온 아빠에게 나는 문득 음악이 듣고 싶으시냐고 물었다. 아빠는 희미하지만 명확하게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되어있던 것처럼 자연스레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하여 틀어드렸다. 만족해하시는 눈치에 내가 어찌 이리 좋은 생각을 했지 하고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방문을 닫고 나온 그날의 늦은 밤에, 아빠는 젊은 시절 자주 함께 했던 재즈 선율을 배경으로 하여 숨을 거두셨다. 그날 아빠는 나에게 음악이 듣고 싶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아빠에게 그 음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도, 그렇게 나는 '조금은 더 잘' 알게 된 채 아빠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