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은 10여 년 인생에서 한 번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굴뚝 타고 오시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릴 때 어린이집에서 산타 복장을 한 이벤트 직원의 무릎에 앉아 선물을 꼭 쥔 채로 엉엉 울고 있는 활동 사진을 받아보긴 했지만 본인도 딱히 산타를 만났었다고 기억하지는 않는 듯하다. 엄마,아빠가"사실 이 세상에 산타는 없단다, 얘야."하고 말한적은 없어도, 또 "산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러 오신단다."라고 말해본적도 없기 때문에 딸아이는 자연스레 크리스마스에 대해 극현실주의적인 인식만을 하고 있다. 생일과 더불어 '엄마, 아빠에게 제법 괜찮은 선물을 받게 되는 날'이라는.
12월이면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을 설레게 하는 '산타 할아버지'를 나는 딱히 지켜주어야 할 동심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더욱 솔직히 말하자면 어린이 입장에서 볼 때 심각하게 치사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게 선물을 안주신대요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애인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날 때 장난 할 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을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날 때 장난 할 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라니! 한마디로 '너 말이야, 선물 받고 싶으면 행동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저기 어디서 누군가 다 지켜보고 있어요~"로 요약할 수 있는 반협박성 멘트에, 치사하게도 내 아이가 순하고 착하게 굴기 바라는 부모의 바람을 '산타'의 요구로 치환하여 아이가 부당하게 느낄만한 여지에 대한 책임까지 떠넘긴다.
어린이 입장에서 보자면 연중 나를 관찰하며 평가하고 있는, 만난 적은 없으나 존재한다고 하는 미스테리한 존재로부터 연말에 선물 하나 받자고 울어도 안되고, 짜증내서도 안되며, 장난도 안 하는 편이 나을 것이고, 시종일관 '착하게' 굴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거 이래서 숨이나 편히 쉬고 살겠나 싶다. 어린이란 모름지기 부모 앞에서 마냥 깔깔거리며 까불기도 하고, 어처구니없이 짜증도 내보았다가, 장난도 실컷 쳐보고, 울고불고도 좀 해보았다가, 한소리 듣고 훌쩍대면서도 커다란 품에 안겨 자신이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며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울지 않는 착하고 의젓한 어린이'의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어른'의 눈치를 살피며 누군가의 칭찬을 듣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자로서 단언할 수 있다. 이렇게 성장하면 나이 들어 고생한다. 살아가며 자연스레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 중 '좋은 것'만을 허락받은 이는 '나쁜 것'이 찾아오면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삐그덕 대다가 대충 억눌러버리거나 엉뚱한데 화풀이를 하지 않으면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풍부하게 경험하고, 이를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면 좋을지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해야 '세상'에서 건강하고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문제집만 풀 줄 알았지 정작 내면의 문제는 돌보지 않은 채 겉만 멀쩡한 미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났더니 세상살이가 참 고되었다.
산타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아마 억울할 것이다. "너 이렇게 떼부리면 저기 저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한다." 할 때 별안간 남의 자녀 훈육에 영문도 모르고 소환된 '저기 저 경찰 아저씨'만큼 당혹스러우실 것 같다. "제가요? 왜요?" 하고 외치고 싶으실 지도. 만약에 산타가 선물을 주러 오신다면 그것은 그 어린이가 '착함' 체크 리스트에서 합격점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서 '무언가 좋은 것'을 내어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이 바로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준비한 것뿐이다. 그러니까선물을 받기 위해 굳이 착한 아이가 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