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어설프고 서툴러 보는 사람은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본인은 한껏 진지한 존재. 삶의 모든 걸음이 '완벽'에 닿지 못할까 봐 발을 동동거리며 사는 나는 이렇듯 무해하고 엉성한 작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마구 간지러워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이 특유의 장면과 순간들을 나는 내 맘대로 '어린이 moment'라고 부르는데 흔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므로 한 번 만나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머리와 마음에 정성껏 저장해 둔다.
몇 해 전이었다. 교실에서 분주하게 아침 맞이를 하고 있는데 어린이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응, OO이 왜?"
"......"
"음...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선생님, 제가 어제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요, 비밀이라 말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유 저런... 아쉽지만 비밀이라니까 어쩔 수 없지. 알겠어."
제발 그 비밀을 좀 알려달라는 선생님과 이건 중요한 비밀이라 그럴 수 없겠다고 짐짓 실랑이를 벌일 것을 기대하며 운을 띄웠던 어린이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순간 정지 자세로 '사실은 그렇게까지 큰 비밀은 아니었다'며 말을 바꾸고 준비해 두었던 말을 할지, 해 놓은 말에 알맞게 뒤돌아 설 지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자를 선택했다. '비밀'의 무게를 인정해 주는 선생님과 엄숙하게 눈을 맞추고 돌아서는 어린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는데 '그냥 말할 걸, 왜 비밀이라고 해가지고는...' 하는 자막이 삐뚤거리며 지나가는 게 보여서 심장이 간질간질, 볼이 움찔움찔했다.
어떤 해에는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희한하게도 영어를 할 때면 페르소나 변환이 극단적으로 이루어져 각 반에 들어설 때마다 "Hello everyone!"을 외치는 내 목소리가 무척이나 우렁차고 발랄해진다. 매번 보는 얼굴이 그 소리와 매칭이 되었는지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Hello everyone!"하고 세상에서 가장 씩씩하고 반갑게 외치는 어린이가 있다. 나를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활짝 웃는 그 아이는 'greeting'의 본질을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이해하여 실천하고 있으므로, 나는 감히 호칭의 오류를 지적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유독 힘이 빠지는 날, 문득 오래된 서랍을 뒤져 나만의 '어린이 moment'들을 소중히 꺼내어 들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언제 보아도 한결같이 눈부시고 변함없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