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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네 Dec 16. 2023

내 멋대로 살겠습니다

    대체로 순하고 무던해 보인다는 평을 듣는 인상과 다르게 나는 '세상이 그렇다고 하는 것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때 내가 이것을 어떻게 느끼고 판단하는지 찬찬히 살피고 확인해 보아야 안심이 되는데, 만약 이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빠른 결정을 내리도록 재촉한다면 '나'를 지키지 못할까 봐 그만 겁을 집어 먹고 그 사람으로부터 열심히 도망쳐버리고 만다.


    생애 첫 집을 마련할 때였다. 부동산 필승 조건이라는 한강 뷰, 학군지, 대단지 아파트들을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지만 도무지 끌리지 않았다. 어쩌면 당시 전세로 오래 살았던 집앞동뷰에 질린 탓인지, 대신 어디에서나 산이 내다보이는 공원 옆 두 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를 골랐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여기를 어떻게 꾸미고 살면 좋을지 고민이 되는 것이 이게 바로 내 집이구나 싶었다. "왜 안 팔릴 집을 사느냐?"는 무시무시한 뒷말을 들으며 들어간 그 집을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단정하게 꾸며놓고 수년째 평안하고 흡족하게 살고 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매일 아침저녁으로 솟아나는 해와 노을을 만나는 것, 동그랗고 뽀얀 달이 눈앞에 보이면 '어느새 또 보름이 되었나 봐!' 하고 퍼뜩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어딜 신나게 돌아다니질 않는 극 I 가족에게 이 집이 선물해 준 소중한 순간들이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교육 정보'라는 이름으로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소식들이 꽤 오랜 기간 나를 뒤흔들었다.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봐' 등 떠밀리듯 하는 교육 말고 내 아이가 단단한 영혼을 갖고 이 세상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탐험하며 살아가는데 발판이 되어주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당장의 속도에 개의치 않고 천천히, 깊이 생각하며 세상을 탐구하는 공부는 아무리 봐도 가정에서 매일 같이 해야 맞겠기에 우리 아이는 아직 '학업'을 위한 학원은 다니지 않고 있다. 대신 글맛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언제고 책을 읽고 또 읽는 작은 독서가로 자라났다. 칠판에 나란히 써 놓은 숫자들과 블록 놀이로 수와 도형을 실컷 '만져'본 아이는 이제 종이 위에 쓰인 수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으며, 뜻도 모르고 보던 만화로 영어를 알게 된 후 이제는 영어책을 읽어나가면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원작의 호흡 그대로 만나고 있다. 일과와 일과 사이 빈 시간은 아이가 실컷 멍도 때리고 킬킬거리며 놀기도 하면서 채워나간다. 이 길이 아이에게 해가 되는 듯하면 그만 방향을 바꾸어야지 하고 한 해 한 해 지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이도 나도 이대로 함께 숨 쉬듯 성장하고 또 그 성장을 발견하면서 사는 삶이 기쁘고 흐뭇하다.


    내 멋대로 살아가겠다는 말은 '나의 가치'를 따르며 살겠다는 뜻이며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선언이다. 자꾸 말해줘도 자꾸 잊어버리니 더 자꾸 말해주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는 대로 나아가렴. '나'로 마음껏 기쁘게 살아가렴. 그게 바로 이 커다란 우주에 많고 많은 사람 중 '나'로 태어난 이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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