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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네 Nov 26. 2023

당당하게 놀고 싶다

 한없이 처지고 마냥 눕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의 수고를 충분히 다 했으니 이제 좀 퇴근해도 되지 않나 싶지만 시계가 냉정히 현실을 알려줄 때, 남몰래 양말이라도 슬쩍 벗어서 서랍에 넣어 두고 맨발로 집에 있는 기분을 내 보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을 때, 슬슬 걸어 사내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 신간 들어온 것도 없고 내가 신청한 책은 다 빌려 보았으니 딱히 멋진 책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 거야’하고 일부러 기대를 낮추고 찾아가서는 익숙한 서고를 새로운 눈으로 훑는다. 

 ‘이건 뭐지? 지난번에 못 봤는데... 재밌을까? 찬찬히 읽으면 흥미로울 것 같긴 한데 나의 뇌가 애써서 소화해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야. 오? 이 책 뭐야?! 누가 이렇게 내 마음을 딱 알아채서 제목으로 지었지?’의 과정을 거쳐 ‘당당하게 놀고 싶다’라는 책을 뽑아 들었다. 그냥 놀고 싶다도 아니고 당당하게 놀고 싶다니! 그럼 이 사람도 늘 노는 게 편치 않았나 보다. 

 쓸 수 있는 휴직도 있고, 함께 돈을 버는 남편도 있으며, 아직은 손이 가는  아이도 있고, 내 마음 건강도 오락가락하니 이마 저마해서 좀 쉬겠습니다고 선언하면 누가 반대하랴만(반대할지언정 바짓가랑이 잡고 말리기야 하랴만!), 나는 “좀 쉬어야겠습니다”는 말은 해도 “좀 놀아야겠습니다”라는 선언은 상상하지 못해 보았다. 한국인의 DNA에 새겨져 있다는 강력한 근면 성실 유전자를 나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인지, 베짱이는 세월 좋게 노래만 부르고 놀다가 개미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목숨을 부지했다는 치욕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배워서 그런 건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주식으로 퇴직금 다 날리고 집에서 노는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하던 가정에서 자라서 그런 건지. 하여간 나는 논다는 게 언제나 부끄러웠다. 

 대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했고 회사 다닐 때도 야근하는 게 내가 하고 있던 일의 가치와 상관없이 왠지 바람직하게 느껴졌다. 어느 돌아버린 해에는 팀 동료들이건 동기들이건 5일씩 떠나는 여름휴가를 자발적으로 금요일 오후 반차로 땡치고는 너무 바빠서 일하러 나오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주위에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지구를 구하는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다. ‘노는 것은 나쁜 것. 내 육신과 영혼을 갈아 일하는 것은 위대한 것’이라는 요상한 망령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어 참 헤어지기가 힘들었다. 이런 나에게 당당하게 놀고 싶다고 고백해 오는 저자라니, 이 사람이 쏟아놓았을 자질구레한 마음속 이야기들을 빨리 만나고 싶어 책을 손에 쥐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흥이 났다. 

 앉자마자 목차부터 살펴본다. 음... 노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 빈털터리가 되면 객사를 각오한다, 늙음, 질병, 죽음과 친해지는 법... 이상하다. 표지를 다시 확인해 본다. 아...‘당당하게 늙고 싶다’였구나. 글자가 깨알같이 쓰여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 노안인가. 이왕 빌려온 책이니 읽어보려 했으나 지금 나에게 닿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지 도저히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는다. 소노 아야코 님 나중에 다시 만나요. 5분 전에 빌려온 책을 어이없이 반납하러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당하게 놀고 싶다’라는 책이 세상에 없다면 그냥 내가 써버릴까? 누군가는 나처럼 너무나도 놀고 싶은데 죄책감에 동동거리고 괴로워하며 놀게 될까 봐 못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누군가가 ‘당당하게 놀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직 쓰지도 않은 책의 제목을 먼저 정했다. 당당하게 놀고 싶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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