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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네 Dec 06. 2023

첼로를 합니다

    첼로를 배우고 있다. 3년째다. 극심한 코로나로 학원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때와 더 이상 못 배우겠다며 도망쳤던 시기를 다 빼도 그 정도 된 듯하다. 내 첼로 여정의 시작을 기억하는 지인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신기해하며 묻는다.

     "와, 지금도 첼로 배워요? 그럼 이제 장한나 된 거야?!"


    나도 그럴 줄 알았지. 3년이면 설마 장한나는 못되어도 '첼로 좀 하는 멋쟁이 아마추어' 정도는 되는 줄 알았다. 여전히 '끼기기이익' 하고 숨이 멎을 듯 아슬아슬한 소리와 난해한 박자 감각을 장착하고, 제멋대로 음을 뭉개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내 손가락들을 바라보면서 '이게 실은 불수의근이었던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시작은 이랬다. 학교 앞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들을 보고 인상 깊었는지 자기도 저렇게 '특별한'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익숙한 것을 두고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은 부모가 억지로 쥐어줄 수 없는 귀하고 반가운 성장 욕구이므로 기회를 놓칠세라 원장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신체 조건을 볼 때 첼로가 가장 적합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아이에게 첼로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다행히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됐어!'를 외치며 얼른 중고 첼로를 찾아보려 당근 마켓을 여는데 아이가 슬그머니 덧붙였다.

      "근데 엄마랑."

응? 나? 이 나이에? 마흔 넘어서? 그것도 첼로를??


      "어머님, 손목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요."

      "왼손이 자꾸 망설여요. 과감하게 움직여보세요."

      "어깨가 너무 솟았어요. 힘 빼고..."

      "소리가 계속 부앙부앙 떠요. 활 밀착하세요."

      "왼팔과 오른팔은 별개의 자아니까 분리하세요."

      "지판 보고, 음 정확히~"

      "활 가볍게 잡으세요."

      "왼손 꼬집지 말고 편안하게."

      "엄지 손가락 힘 빼세요 힘~"


    악착같이 노력하여 빠르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왔던 나는 지난번에 들었던 지적을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심지어 다음 해에도 듣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해 드려야지! 비장하게 레슨장에 들어서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신중하게 활을 긋는다.


      "끄아아아앙!"

      "헉... 어머님 잠시만요! 소리가..."


    허허... 이번에는 정말 알았는데, 쇳소리를 내며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울수록 나에게서 멀어지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이 난관을 돌파해 내겠다는 결심이 굳건해질수록 손과 팔은 더욱 경직되었고, 잔뜩 긴장한 몸과 맘으로 연주하는 첼로는 절대로 편안한 소리를 내주지 않았다.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보면 꽉 차고 깊은 소리를 내면서도 손목은 낭창낭창 유연하던데, 난 첼로 활이 아니라 도낏자루라도 움켜쥔 양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힘 빼는 것.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봐... 이 나이에 내가 뭘 배운다고.'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첼로를 붙잡은 세월은 늘어나는데 정작 실력은 늘질 않으니 약도 오르고 조바심도 나 괜히 재능 탓, 나이 탓을 해 본다. 전공할 것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데 이 정도면 어떠랴 마음을 다잡았다가도, '무언가를 계속 엄청나게 못하는 상태'가 주는 스트레스에 혼자 첼로를 그만뒀다 다시 했다 변덕을 부렸다. 사실은 이대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선생님께 잠시 레슨을 쉬어야겠다고 한 것이 몇 번인지. 그래놓고 또 여전히 첼로를 붙들고 낑낑거리고 있는 보면 아무래도 나는 쉽사리 첼로를 놓아주지 않을 건가 보다.


    만나면 부대끼고 헤어지면 그리운 첼로와의 인연은 사실 아이가 아니라 나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시작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15년 전쯤일까? 직장에서 한껏 너덜너덜해진 지방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그런데 이 정도로 힘들면 도망쳐도 되는 거 맞긴 한 건가'하는 고민에 빠진 채 장롱 면허를 품에 안고 덜덜 떨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무심히 틀어 놓은 CD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왔다. 반주도 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나직이 읊조리던 노래가. 왕초보 주제에 운전하며 제목을 확인할 겨를은 없어서 무작정 '반복 재생'을 누르고 목적지까지 꼭 붙들고 갔던 그 곡이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였다. 당시로서는 직접 첼로를 배워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였고 다만 내가 첼로의 음색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알게 되어 새로웠다.


      15년 뒤의 내가 나만의 첼로를 가슴에 폭 안는다. 아무 생각 없이 붕~ 그어본다.

      "어머니! 잘하셨어요! 바로 그거예요!"

      "네? 제가요?"

      "네 어머님이요!"

      "... 제가 지금 뭘 했죠 선생님?"


    못 할 때도 왜 안되는지 모르겠더니, 잘했다고 칭찬을 하시는데도 내가 뭐를 잘했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그놈의 '힘 빼고'가 가능해지는 날, 첼로와 부쩍 친해질 것임은 분명한데 그날이 과연 언제 올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정말이지 첼로 못하기도 이제 좀 지겹다. 첼로를 (잘 못)한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첼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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