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말 안 듣고 내 맘대로 해보았지
나른한 오후의 아무 생각 대잔치, 일상 속 소소한 관찰과 발견들, 치열했던 내적 전쟁기 등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만 보는 일기인 양 쏟아내었더니 '이거 정말 내가 봐도 되나'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분도, '맞아 맞아'하며 공감하는 분도, 눈이 빨개진 채 다가와 꽉 안아주는 분도 있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을 달아준 독자들도 있었다. 왠지 쑥스러워서 답글은 못 달았지만 언제나 많이 설레고 감사했다.
한창 '길바닥에 드러누운 고물 열차' 신세였을 때, 아파서도 아팠지만 '남들처럼' 씩씩하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이라는 자기혐오와 외로움 때문에 더 많이 아팠다. 그때 누군가 (실제로 만난 사람이 아니라 책이나 화면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약하고 못생긴 마음을 담담하게 내보여주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나만 이렇게 못난 건 아니었나 봐...'하고. 우리는 모두 성숙한 어른으로 살고자 노력하므로 이런저런 상처들을 어떻게든 봉합하고 괜찮은 듯 살아간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꾸욱 눌러두었는데 삐죽 튀어나와 스스로를 찔러대는 조각들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그 옆에 앉아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은... 나도야..."
모두에게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잔뜩 헝클어진 내 맘을 글로 적어두고 가만히 책장 위에 올려둔다. 누군가 마음이 자꾸만 아프고 부대낄 때 내 글을 펼쳐 보고는 안심하고, 한숨 돌릴 수 있으면 한다. 아픈 것도 힘든데, 외로워서 더 힘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내 지인이라면 그 또한 기쁘다. 글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테니. 역시, 이번에도 내 맘대로 하기를 잘했다.
그런데, 어라? 문제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의 구독자 중에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분도 계신데, 그분이 생각보다 꼼꼼하게 내 글을 살펴본다.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 먼저 보여주곤 했는데, 어떤 단어가 잘 와닿지 않는다, 이건 빼야지 안 그럼 나중에 후회하겠다 등 적극적인 피드백이 돌아온다. 들어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아 수정을 하면서도 왠지 씩씩대게 된다. 게다가 그 독자님에 대한 언급은 쉽게 할 수가 없다는 점도 편치 않다. 어느 날, 감자네가 아닌 새로운 필명으로 남몰래 그 구독자님 관찰기를 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거 '내 맘대로 살 거야, 말리지 마! 병'이 아주 중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