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절정 가을산

by 서순오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은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같은 산이라도 계절마다 코스에 따라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이다. 그래서 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맛과 멋이 그때그때 다르다.


'가을 단풍'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설악산, 백암산, 내장산, 주왕산 등이다. 내가 가본 곳 중에서는 그렇다.


100대 명산을 찍으면서 가을에 가본 곳 중에 가장 예쁜 곳은 주왕산이었다. 단연 전국 최고였다. 주왕산 전체가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다. 아마도 단풍 시즌을 잘 맞추어갔고 산이 그리 높지 않아 단풍이 골고루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주왕산은 내가 강추하는 단풍 산행지이다. 주왕산은 거의 편안한 육산이고, 하산길에 만나는 폭포도 여러 개 있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다양하며 풍경도 중국의 천계산 풍경구나 요르단의 페트라 사잇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단풍'하면 뮈니뭐니해도 설악산을 빼놓을 수 없다. 설악산은 고도가 있는 산이고 다양한 코스가 있어서 시기별로 조금씩 다르게 단풍이 물드는데 빼어난 풍경과 잘 어우러진 단풍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설악산을 20대 대학시절에 공룡능선 타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1번, 다른 코스로 2번, 총 3번 정도 탄 적이 있다. 그때 함산 했던 분이 현재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데, 몇 년 전에 톡으로 연락이 와서 들어보니 내가 공룡능선 탈 때 입술이 다 부르트고 발도 다 까지고 너무 힘들어해서 하산해서는 달구지를 얻어 타고 버스 탑승지까지 갔다고 한다. 아마도 소공원에서 달구지를 탔지 싶다. 나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다른 사람이 기억해주는 나는 조금 낯설다. 그때 내가 만난 설악산 단풍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단풍 중 최최고의 단풍이었다. 가을 햇빛에 눈이 부신 빨갛게 노랗게 불타오르는 단풍을 보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절 내 가슴도 불타올랐고 사랑이 고팠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프고 시리며 빛나는 설악산 가을 단풍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빛깔이었다.


최근 5년 안에 설악산을 총 4번 다녀왔다. 한계령~대청봉~천불동 코스 봄에 1번, 마등령~공룡능선~천불동 코스 초여름에 1번, 한계령~귀때기청봉~원점회귀 여름에 1번, 오색~대청봉~백담사 코스 가을에 1번이다. 가을에 단풍이 제법 고왔다.


그리고 최근 3년 안에 백암산 백양사 근처의 단풍, 내장산 내장사 앞 단풍터널도 뒤질세라 단풍 자랑을 한다. 절 경내의 뜰과 호수와 길과 어우러진 단풍, 알록달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바닥에 수북이 쌓인 단풍, 휘어져 내린 단풍 가지와 물 위에 동동 뜬 단풍잎들이 수놓은 그림은 사람이 그리기 어려운 자연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백암산과 내장산은 굳이 산을 오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가서 볼 수 있는 단풍이다. 그런데 단풍 시즌에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조금 문제이기는 하다. 또한 사람들이 백암산 내장산 단풍이라 부르긴 해도 실제 산 위에는 단풍이 거의 없는 게 아쉬움이기도 하다.


올 10월 중순에는 설악산 단풍을 보러 갈 예정인데, 딱 단풍시즌이 되겠다. 옛 생각을 하며 정겨운 산우님들과 함께 단풍숲을 마음껏 음미하며 걸어보고 싶다.

20대 대학시절 설악산 단풍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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