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을 연주하는 사람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백혜선, 다산북스 )

by 서순오

이 책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처음에 책을 고를 때 제목이 끌렸다. 반어법을 사용한 이런 제목은 지금 현재 성공을 이끈 사람만이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인생의 난관 앞에서 무수히 많은 좌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좌절을 딛고 일어설 것인가?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감히 자신을 '좌절의 스페셀리스트(※)'라고 명명하며 좌절을 다른 더 좋은 것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수영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길이 아님을 알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간다. 의사인 아버지의 반대와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혜선이 피아니스트로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데는 집안 환경이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누구나 다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하는 피아노 개인레슨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은 선생님에게서 사사받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나는 미술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배우지 못했다. 악기는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음악지능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 돈이 없어도 가능한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수영도 피아노도 배울 수 있었던 백혜선은 어쩌면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능이 있고 환경이 좋을수록 더 많은 호된 노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백혜선은 피아노를 포기하고 전화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누구에게나 다 고비가 있듯이 백혜선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건반 앞에 앉을 때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다.


피아니스트 세계에서 동양인 여성이라는 핸디캡은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실소하던 관객들 앞에서 주눅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백혜선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감동의 연주를 들려주어 모두가 기립하여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해 세계에 이름을 렸다. 그리고 서울대 음대 사상 최연소의 나이 29세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두 명을 낳았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백혜선은 다른 길을 선택한다. 연주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10년 만에 교수직을 내려놓는다. 이혼하고 홀로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낯선 이국땅 허허벌판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홀로 두 아이들을 키우는 생계형 피아니스트가 된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명문 음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두 아들딸을 모두 하버드 대학교에 보낸 교육자 우뚝 섰다. 백혜선은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듣는다.


그러나 백혜선에게도 이 잭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은 아픔이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혼했다. 꿈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는데 환경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이다.


무엇이 우리를 좌절시키는가? 백혜선 피아니스트처럼 '좌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스페셜리스트 : 특정 작곡가의 곡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사람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백혜선, 다산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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