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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Aug 14. 2024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소설가 J 씨에게

  J 씨,

  그동안도 소설 열심히 쓰고 있죠? 온라인 서점에서 보니까 최근에 소설집도 냈더라고요. 구입해서 읽어보니 J 씨 성향에 잘 맞는 다정다감한 소설이더군요.

  "아하!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나 보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을 읽었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고 학원 문예창작학과에 하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J 씨였네요. J 씨는 우리 과의 조교를 맡고 있었지요. 학과 사무실이 다른 예술대학원 사무실이랑 같이 쓰는 통합형이었는데 우리가 공부하는 건물 맨 꼭대기층에 있었어요. 사무실에 볼 일 있을 때는 마치 높은 집의 옥상을 올라가듯이 계단을 몇 개 올라갔는지 요. 오르고 또 오르고 다리가 팍팍해질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풍경은 아주 근사했어요. 거기서 통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학교 연못이 보이고 주변으로 서있는 나무와 꽃과 건물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왔어요. 저는 그 풍경이 보고 싶어서 특별한 일이 없을 때도 사무실에 올라가 보곤 했어요. 사무실은 늘 열려 있었고, 어떤 때는 J 씨가 없고 다른 과 조교가 있기도 했고, 가끔은  아무도 없을 때도 있었지요. 저는 조용히 풍경만 감상하고 내려왔요.


  J 씨  근처서 자취를 하고 있요. 저는 수유리에서 다녔으니까 학교가 꽤나 멀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참 부러웠어요. 물론 이야기만 들은 것이라 어떤 자취방인지궁금했어요. 학교 뒤쪽으로 약간 산 쪽에 언덕이 진 곳에 있다고 했지요.


  당시 우리 과 사람들은 대학원 합격자가 한 해에 공별로 한 명 정도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원생 석박사 과정 전체를 다 합쳐도 한 20여 명이나 되었을까 싶네요. 우리는 수업도 함께 들은 적이 많아요. 수업을 마치면 같이 저녁을 먹고 또 2차, 3차 애프터를 가서 술을 마셨지요. 끝없는 문학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요. 그러다 결국에는 다들 취해서 집에 못 들어가는 친구들은 J 씨 자취방에서 자기도 했었다지요. 여자들은 택시를 타고라도 어떻게든 집에 들어갔지만요.


  제가 문창과에 들어간 해에 함께 격하신 나이 드신 남자분 생각이 나네요. 그분은 이미 시인으로 등단해서 시집도 냈 분인데 한자 이름에 구름과 낙엽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분이 좋은 직장도 다니고 있어서 가난한 우리들 밥값이며 술값도 거의 도맡다시피 해서 내주셨는 데요. 어느 날 술자리를 몇 차까지 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총알택시를 탔는데 사고가 났다지 뭐예요?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분이 되었지요.


  저는 그때 휴학을 하고 결혼을 해서 첫와 둘째 아이를 낳은 상태라 그분의 소식을 듣지도 못했고 가보지도 못했네요. 아마도 J 씨가 조교니까 연락책이었는데, 제가 무지 바쁠 거라 생각하고, 또  안 좋은 소식이라 일부러 알리지 않은 듯해요. 제가 복학을 해서 그분 얼굴이 안 보이기에 물었더니 그제야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요.

  "사람이 이름을 잘 지어야 해."

  "그러게요. 구름과 낙엽처럼 자유롭고 싶었나 보네. 일찍 간 걸 보니까요."

  우리는 술자리에서 한 마디씩 했어요. 그 후로는 그분이 없으니 이며 술값은 다 같이 더치페이를 했고요.


  J 씨,

  우리 과에는 현대시, 현대소설, 고전 전공이 있었는데, 저는 현대시, J 씨는 현대소설 전공으로 들어왔었지요. 제가 들어가기 전이었을까요? 아님 후였을까요? J 씨는 그 어렵다는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했어요. 무슨 문학상도 받아서 소설집도 냈지요. 함께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책에 사인해서 선물로 주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 책을 가지고 있어요.


  J 씨,

  기억나는 것은 문학보다도 바바리코트가 참 잘 어울렸J 씨의 모습이네요. 카키색에 가까운 조금 짙은 비둘기색이었는데,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허리 벨트 지요. 그래도 바바리 자락이 바람에 자연스럽게 흩날리는 모습은 어느 만영화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어요. <들장미 소녀 캔디>에 나오는 리우스를 닮았을까요? J 씨 머리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딱 그랬어요. 여자들은 대체로 분위기에 약하잖아요? 저는 마음속으로 '내가 결혼하지 더라면 J 씨를 사귀어 보는 건데' 그러면서 살짝 흠모의 마음을 가졌어요.


  저는 그때 일기장에 J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몇 장 썼어요. 지금은 그 일기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요. 보내지 못한 손 편지가 되었네요. 거기에도 바바리코트에 대한 이야기를 썼던 것 같아요. J 씨의 바바리코트 옷소매를 가만히 잡고 둘이서 나란히 걸어보고 싶다고요.


  J 씨는 상 복이 많은 것 같아요. 몇 년 전에도 유명한 문학상을 또 받았으니까요. 아니 실력이 있는 겠지요. 지금은 어느 대학에서 소설 강의를 하고 있지요?


  는 가끔 J 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냥 보고 싶어요. 단풍 고운 가을이 좋을까요? 하얀 눈 소복이 내리는 겨울이 좋을까요?

  "지금도 바바리코트를 입을까? 나를 만나러 온다면 그때 입었던 것과 비슷한 바바리코트를 입고 나올까?" 

  기대를 해보면서요.


  물론 만나는 일은 아주 쉬워요. J 씨가 진행하는 문학행사 같은 데 제가 신청을 해서 가면 되니까요. J 씨는 깜짝 놀라겠지요? 그지만 그런 공적인 장소에서 말고, 그냥 따로 아주 사적인 장소에서 만나 싶어요.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서 옛이야기도 나누고 그면 좋겠어요.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고요. 그러면 우리가 다시 만남의 물꼬를 튼 후에 제가 쓴 글도 메일로 보내드리고 한 번 읽어봐 달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데요. J 씨는 소설을 잘 쓰니까 꼼꼼하게 잘 봐줄 수 있을 텐데요. 그렇게 글 친구가 되면 참 좋겠다 생각을 해요.


  렇지만 저는 그저 조용히 지내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어디 문학행사 같은 데 쫓아다니는 건 잘 안 해요. 산이나 여행이라면 몰라도요. 문학행사에 가서 다수의 아는 얼굴을 만나는 일이 별로 내키지 않는 거죠. 제가 그래도 문학을 꿈꿔온 세월이 오래인지라 여기저기 문학 관련 지인들이 참 많거든요. 지금은 그림도 그리고 있어서 미술가들도 꽤 알고요. 더군다나 저는 지금은 술 못해서 그분들과 긴 시간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어려울 수 있어요. 술은 잔을 부딪쳐야 맛이라는데 저는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러니 우리도 그저 객관적인 관계가 좋을 수도 있겠네요.


  J 씨, 그럼 잘 지내요. J 씨가 소설집 내면 또 사볼게요. 참, 저도 첫 번째 그림책 냈어요. 제목은 <탄생>인데, 우리 외손녀를 기다리면서 그 설렘과 축복을 담아 썼지요. 예쁜 외손녀는 그새 태어나서 백일을 지났네요. 궁금하면 J 씨도 제 그림책 사서 보셔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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