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나는 자주 당신이 아닌 어떤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봐요. 내가 당신을 알기 전에 만난 사람들도 있었고, 당신을 안 이후에도, 또 지금도 산행이나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좋은 사람은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가만히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그래도 그렇지만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당신이 100% 딱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보다 내게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거지요.
당신도 내가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나처럼 다혈질이고(나이가 든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직선적이고, 자유분방하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고, 그런 사람을 이 세상 어느 남자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렇죠? 당신이니까 나를 참아주고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럭저럭 살아주는 것이죠. 우리 피차 '나랑 살아주어서 고맙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내가 당신을 '손편지' 주제의 맨 마지막 글로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당신은 내가 보낸 쪽지 편지와 카드와 손 편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내 손 편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진 않았지요. 학보를 보내올 때도 달랑 주소만 적었어요. 우리가 결혼하면서 내가 보냈던 손 편지들은 다 모아서 당신 앨범의 사진과 함께 새로운 앨범에 정리해 두었어요.
나는 사실 7년 연애를 하고 처음으로 당신 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아주 단단하게 마음먹고 헤어지려고 했어요. 어머니가 아주 특이한 종교를 믿고 있었고, 당시에는 내가 교회는 안 나가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결혼하면 좀 많이 힘들겠다 싶었어요.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한 집안과 한 집안이 맺어지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내가 그동안 손 편지를 주고받은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보낸 편지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서랍 안 쪽으로 깊숙이 내가 보낸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기 때문이에요. 학보를 보내면서 주소 뒤쪽에 짤막하게 쓴 쪽지 편지들도 모두 가지고 있었지요. 심지어는 내가 헤어지자고 보낸 편지까지도 당신은 보관하고 있었어요.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읽어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지요.
"나를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때 결정했어요. 당신과 결혼하기로요. 그리고 그 순간의 감격을 우리가 함께 사는 동안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요.
우리가 결혼해서 올해로 35주년이 되었네요. 결혼하고 몇 년 후에 '부부의 날'이라는 게 생겼는데, '둘이 하나가 되는 날'이라고 5월 21일을 선정했지요. 그날은 바로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말이에요. 너무나 공교롭지 않아요? 나는 당신과 결혼하면서 <하나를 위하여>라는 자축 시도 썼는 데요. 결혼은 분명 '둘이 하나 되는 날'이 맞아요. 나를 조금씩 내려놓고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야 하니까요.
당신과 살아보니 내가 선택을 잘했다 싶어요. 아마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열두 번은 더 헤어졌을지도 몰라요. 별안간 '집 나간다'하고 휘휘 돌아다니고, 무어든 시작도 잘하고 끝도 잘 맺고, 일이든 사람이든 싫증도 잘 내고, 끄떡하면 울기도 잘하고, 새로운 것만 좋아하고, 좀 톡톡 튀는 성격이라서요.
그래도 당신은 언제나 커다란 바위처럼 그 자리에 든든히 있어주고, 내가 무어라 하든지 넉넉한 바다처럼 다 받아주었으니까요. 이제야 말이지만 당신이 마음에 드는 다섯 가지 이유를 써볼게요. 추리고 추린 것이라서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그럼 내가 너무 바보 같으니까 그냥 이 정도가 좋겠어요.
첫째는 술 많이 안 마시고(당신 주량은 맥주 두 잔 정도), 절대 주정 안 하고, 술 마시면 바로 집에 와서 잠자는 거예요. 나는 아버지가 술꾼이어서 그런지 술 많이 마시고 주정하는 사람, 특히 술 냄새가 싫어요.
두 번째로는 내가 어딜 가든지 목적지와 모임만 분명하다면 '어딜 가냐? 누구랑 가냐?' 채근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이토록 자유롭게 산행과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당신은 내게 '방목형'이라고 했어요. 몇 날 며칠 어딜 가든지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요.
세 번째로는 밥투정뿐만 아니라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 거예요. 밥과 반찬을 어떻게 해주어도 맛있게 잘 먹어서 좋아요. 집안 청소도 설거지도 "왜 이러냐?" 한 적이 없어요. 깨끗하게 치우면 고맙고 조금 지저분해도 잘 지내줘요.
네 번째로는 "돈 어디다 썼냐?" 따지지 않는 거예요. 월급을 잘 받아오던 때부터 은퇴 후인 지금까지도 돈 관리는 모두 내가 하는 데도 사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살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치하는 형은 아니지만, 단 한 번도 "그거 왜 샀냐?" 그런 적이 없어요. 옷도 화장품도 가전제품도 컴퓨터도 핸드폰도 등산용품도요. 그 무엇이든 돈이 있고 내가 원하면 살 수 있어요.
다섯 번째로는 나이 들어가면서는 집안일도 잘해주는 거예요. 젊어서는 집안에 못 하나도 안 치던 사람이 나이가 드니까 밥도 해주고, 빨래도 널어주고, 설거지와 방청소도 해주고, 가끔은 콩국수나 라면 같은 것도 끓여주니까요. 밥 먹기 싫은 날 당신의 제안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콩국수 먹을래?"
"응. 아주 조금!"
당신이 해주는, 얼음을 동동 띄운 콩국수는 정말 맛이 있어요.
'손 편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까 비록 손 편지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더 고마운 사람도 꽤 있었다는 걸 발견했어요. 생각할수로 고마운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깊은 샘에서 맑은 물로 길어 올려질 때마다 그 생수를 마시며 나는 행복했어요. 그중에서 당신의 고교시절 친구와 당신의 막내 여동생이 참 고맙네요. 당신과 관련된 사람들이 이제껏 우리를 깊이 사랑해 주었다는 걸 느껴요. 그만큼 당신이 인복이 많은 거예요.
당신 친구 G 씨는 우리가 수원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벌써 10여 년 이상 우리 식구들의 식품과 생필품을 다 챙기고 있잖아요. 쌀, 보리쌀, 찹쌀,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참깨, 후추, 맛소금, 휴지, 수건, 비누, 세제, 과일, 배즙, 오미자즙, 사과즙, 베지밀 등등 다 헤아릴 수가 없네요. 아예 장을 볼 때 우리 것까지 보는 것 같더라고요. 또 있어요. 내가 카페교회 할 때 매달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이고, 또 카페교회를 그만둔 후에도 1년 치 후원금을 모은 거라면서 딸 외국에서 하는 결혼식에 요긴하게 쓰라며 목돈도 보내주셨어요. 정말이지 이런 천사는 없을 거예요.
또 당신 막내 여동생은 어떻고요. 멀고 먼 이국땅 네덜란드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 아들 대학 다닐 때 학비와 생활비 전부를 매달 보내주었잖아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하라고요. 옷이며 신발도 최고 좋은 것으로 사서 보내주고요. 나에게도 한국에 다니러 올 때마다 가방, 신발, 옷, 목걸이, 반지, 시계, 영양제, 초콜릿, 과자 등을 늘 챙겨다 주고요.
당신,
나는 이미 '당신'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주인공을 찾습니다>란 손 편지 글을 쓴 듯하네요. 여행을 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요.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편안한 집만 하겠어요? 손 편지를 주고받던 많은 사람들은 그저 추억 속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 내 곁에 함께 하는 현실의 사람이잖아요. 나이가 들고 기력이 떨어지고 그러니 정이 쌓여 자꾸만 짠해지는 그런 존재죠. 우리가 어쩌다 만나 사랑과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가장 좋은 것부터 시작해서 가장 안 좋은 모습까지도 보며 살아가게 되었네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그러나 우리는 같은 기독교 신앙인이기에 죽음 이후에 또 만나겠네요. 그때에는 손 편지도 안 쓰고 얼굴을 마주 보면서 싱긋 웃겠네요. 지금까지 손 편지를 주고받았던 사람들도 보겠네요. 당신과 나도 남편과 아내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 만나고요. 그때 우리 함께 환하게 웃어보아요. 그 웃음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