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반역과 적과의 동침 다윗 전략
삼하 15장
왕의 아들은 시간이 지나면 왕이 될 텐데 기다리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반역을 일으킨 사람이 바로 압살롬이다. 사무엘하 14장 후반부에 보면 압살롬의 외모가 아주 뛰어나다고 묘사가 되어 있다. 그야말로 잘생긴 남자이다. 옛날에는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길어서 길게 늘어뜨리고 다닌 모양인데 글쎄 1년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를 정도이니 그 머리가 얼마나 길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당시에는 머리카락의 숱이나 길이 같은 것으로도 미의 기준을 삼았던 것인지 압살롬이 1년에 한 번 깎은 머리카락의 무게가 200세겔이나 되었다고 한다. 또 압살롬의 딸은 이스라엘 여인 중 가장 미녀였단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이런 미모 가정에서 압살롬은 천천히 기다리고 있으면 아주 멋진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압살롬은 어쩌면 자신이 이복형 암논을 죽인 살인자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코스로는 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자신이 없기에 반역을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실력이 있고 당당하면 정당한 경쟁에서도 넉넉하게 이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편법을 쓰거나 반격을 하거나 부당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압살롬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좋게 보는 것을 이용해서 아버지 다윗에게 재판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성문 앞에 서서 자기가 다 판결을 해준다. 그런 횟수가 많아지면서 추종자들이 생긴다. 급기야 헤브론으로 그 무리들을 이끌고 가서 아버지 다윗왕을 반역하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소리치게 한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산하들과 사람들을 데리고 피신을 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이 많다. 제일 먼저는 다윗왕의 태도이다. 어차피 왕위는 아들에게로 내려가는 것이기에 압살롬을 왕으로 인정하는 마음을 갖고 신하들과 백성들을 데리고 피신을 한다. 그러나 반역이기에 선왕인 다윗 편 사람들은 모두 압살롬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현시대 정치를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정상적인 왕위 계승이 아니라 반역이기에 그들을 살려두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러면 양쪽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다윗은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는 다윗 편 사람들의 태도이다. 도망가더라도 죽더라도 다윗을 따르겠다는 충직한 신하들과 백성들의 태도이다. 그만큼 다윗 왕이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리라. 이방 땅에서 넘어온 잇대도 다윗을 따라온다. 압살롬에게로 가서 살길을 마련하라고 해도 도망자의 신세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데, 자기 나라 왕을 버리고 다윗에게로 망명을 왔지만, 두 번 세 번 그런 일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셋 째는 다윗이 가장 충직한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남겨두는 묘안이다. 헤브론에서 왕이 된 압살롬은 곧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것이고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윗을 끝까지 찾아내어 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아렉사람 후새를 예루살렘으로 보낸다. 왕이 바뀌었으니 선왕을 받든 충성심으로 새 왕을 모시겠다고 압살롬에게 말한 후 왕궁의 동정을 살펴 다윗에게 보고하라고 한다. 또 압살롬의 책사인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는 것이다.
다윗이 아니면 생각해 낼 수 없는 책략이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뛰어드는 격이다. 발각되면 즉각 목숨이 위태롭다. 그러나 다윗의 요구에 충신들은 기꺼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고 반역자 압살롬에게로 간다. 위태로운 때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눈앞의 일만 생각하면 적과 함께 하는 동침 전략이 나올 리 없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며 일단 피신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궁구하여 후일을 기약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은 삶을 위해서이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하리라. 적과의 동침은 적을 이기기 위한 가장 좋은 전술인 것이다.
일단 일이 벌어진 후에는 순리에 맡기는 다윗의 태도, 왕에 대한 신하들의 충성심, 내일을 위해 적과의 동침도 기꺼이 하는 다윗의 전략 등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워두면 아주 유용할 것이다. 모든 상황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인간관계에서 신임을 얻을 수 있도록 섬김과 배려가 있는 삶은 살아가는 일 자체가 소중한 행복임을 생긱한다. 눈앞의 자기 이익만을 구해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반역하고 피차 피해를 끼치며 살아간다면 그러한 삶은 그차체가 불행임을 알아야한다. 행복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는 속담처럼 행복하기로 마음 먹고 만사에 긍정과 베품을 실천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도와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