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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축친놈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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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 Nov 08. 2024

조연이 아닌 주연

 '히카르두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루카 모드리치', '카림 벤제마' 방금 거론한 이 선수들은 06년도 이후 발롱도르 수상자들이다. 원래대로라면 16년의 세월이라 16명의 수상자가 있어야 하지만 메시호날두가 둘이 합쳐 13개를 받아버리는 바람에 수상자가 다섯 명 밖에 없다. 이 다섯 명의 선수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한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늘 주연의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조연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가 있다. 그는 남미 출신답게 타고난 볼 컨트롤 및 뛰어난 센스 탑재되어 있다. 몸의 유연성을 활용하여 상대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고 타이밍을 빼앗는다. 


세계 최초 낚시형 드리블러 앙헬 디 마리아. 


 디 마리아는, 부상으로 은퇴한 축구선수인 아버지를 따라 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지역에 있던 팀의 유스로 활동을 하다 17살의 나이로 성인팀으로 합류했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드리블 스킬을 가진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가끔은 지나친 욕심으로 팀에 방해가 되는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때문에 초반에는 주전자리를 꿰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자 이러한 욕심은 팀을 위해 서서히 사라질 기미를 보였다. 


 한 단계 스텝 업을 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곳은 포르투갈의 벤피카였다. 벤피카는 리그 내에서 손꼽히는 강팀이었고 유럽대항전도 출전하는 팀이었기에 세계무대에 본인을 알리기에는 제격이었다. 벤피카에서 발군의 성장세를 보인 디 마리아는 그대로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 당시 멤버로는 느림의 미학 리켈메마지우개 마스체라노, 그리고 영혼의 듀오 메시가 있었다. 성인대표팀과 큰 전력차이를 보이지 않는 멤버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디 마리아는 결승골을 득점하며 금메달목에 걸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벤피카에서의 활약이 계속되자 유럽 다수의 메이저 클럽들이 디 마리아에게 구애를 했다. 그는 결국 정들었던 벤피카를 떠나 조세 무리뉴레알 마드리드로 합류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클럽팀에서는 호날두와 대표팀에서는 메시와 함께 뛰며 메호대전의 주인공들을 바로 옆에서 직관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 성장의 비약이 되었다. 디 마리아는 두 사람의 그늘에 가려져 대중이나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세계 축구를 양분하는 두 선수에게 영감을 얻으며 계속 성장해 나갔다. 결국 디 마리아는 입단 초에 양쪽 측면 미드필더를 소화하던 것을 넘어 메짤라까지 소화할 수 있게 되며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이후 맨유로 이적했지만 반 할 감독의 실험용 선수로써 지옥 같은 생활을 겪었다. 괴짜의 표본이었던 반 할 감독은 그에게 메짤라를 넘어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여러 번의 실험 끝에 그의 맨유 생활은 망했고 실력도 내리막을 걷게 되었다. 그대로 끝나버릴 것 같았던 그의 커리어는 다행히 프랑스의 PSG가 구제해 줬다. 이런 PSG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는 바로 부활의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PSG가 우승을 하며 팀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우스갯소리로, 이때 디 마리아는 "맨유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 덕분"이라며 맨유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마침내 2022년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그는 메시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카타르 월드컵의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 대회는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이기도 했지만 디 마리아의 본인의 마지막 월드컵이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 결과적으로 내 바람대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는 아르헨티나의 축구사메시의 축구인생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올림픽부터 월드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 말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1년 뒤에는 벤피카로 돌아가 클럽 경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가대표팀은 직전 코파 아레리카에서 또 한 번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며 길었던 동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반박할 수 없는 아르헨티나의 레전드이자 메시의 영혼의 듀오. 혹자는 디 마리아를 메시의 그림자에 가린 아르헨티나의 조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린 시절 치렀던 올림픽 결승에서도 호날두와 함께했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그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시간이 흘러 모처럼 정상을 차지했던 코파 아메리카와 라스트 댄스 카타르 월드컵 결승에서도 그의 왼발은 빛났다. 생각해 보면 그는 언제나 큰 경기에 강했던 선수이며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었다. 물론 전성기를 함께 했던 메시나 호날두에 비하면 스타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실력만큼은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는 월드클래스였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고 이것은 영원히 기억될 것" - 앙헬 디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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