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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Apr 24. 2022

명상을 시작하다.

몸이 좋지 않아 이런저런 약에다가 병원비만 축내던 와중에 선배의 권유로 명상을 시작했다.(https://brunch.co.kr/@320km/17)  선배가 알려준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잡념을 지우면서 숨을 쉬시오.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어라 몇 번 해봤는데 의외로 그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잠깐의 명상을 한 뒤에 머리가 살짝 맑아지고, 몸에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긴 시간도 아니고, 단 몇 분이었는데, 그 효과가 만족스러웠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매끼마다 먹는 한 움큼의 약보다는 명상으로 건강을 챙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규칙적으로 꾸준히 명상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아침 출근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데, 이때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점심 먹고, 피곤함과 졸음이 몰려 올 즈음 회사에서 두 번째 명상을, 세 번째는 퇴근 후 자기 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아침 명상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 노엘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가뜩이나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이 명상하려고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았다. 가부좌한 발을 핡거나 품에 안기려고 낑낑거리는 통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몇 분 동안 눈을 감고 아침의 고요함을 느끼는 그 순간은 아침 출근길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근 20여 년 직장생활을 했지만, 회사 생활은 익숙해지지 않고, 피곤한 건 한결같은 것 같다. 특히나 점심 먹고 3시가 넘어갈 즈음 눈은 뻑뻑하고, 집중도도 많이 떨어진다. 마침, 사무실에 한구석에 늘 비어있는 한적한 회의실이 하나 있어 그곳에서 명상을 시도했다. 마스크를 잠시 벗고, 창문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마치며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업무 관련 일이 머리를 스치고, 차의 소음과 바깥공기의 내음을 느낄 즈음 눈을 떴다. 한결 머리와 몸이 가볍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명상은 무거움을 덜어내는 과정이 아닐까?

저녁 명상은 몇 차례 해보지 못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냥 눕고만 싶어 한다. 게다가 퇴근 후 집안은 아내와 아이들, 노엘이 공부하고, 싸우고, 뛰어다니고, 울고, 웃고 하는 통에 조용한 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주말이 오면 가벼운 차림으로 집 앞 산에 오른다. 기분 좋은 풀냄새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봄이 오는 이즈음 자주 올라가는데, 산을 오르던 중 한구석에 작은 평상이 눈에 보였다. 난 조용히 평상에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새소리는 더 선명해지고, 신선한 나무 냄새가 코에 훅하고 들어왔다. 잠시 시간이 멈추는 듯하다. 머릿속에 엉켜있는 실타래가 보이고, 그중 실한가닥이 머리 밖으로 술술 풀려 나간다. 머리끝에서 허리를 거쳐 다리까지 가늘지만 따뜻한 기운 하나가 흐른다. 내 고향 합덕의 언덕길, 태국 피피섬의 푸른 바다, 종로의 뒷골목, 캐나다의 공원에서 맡은 박하향이 짙게 느껴지고, 이내 모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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