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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Nov 06. 2024

6일. 기간제 근로자

이전 직장은 계약 형태로 따지면 사람들을 세 가지로 나눴다. 공무직, 계약직, 기간제. 그중 나는 기간제 근로자였다. 올해 말까지 일하기로 계약한 근로자였다.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정규직, 프리랜서, 그 밖의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해봤지만 기간제 근로자로는 일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까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환상이 조금 있었던 듯하다.

첫째로, 기간제 근로자는 일이 적을 것이라는 환상. 전혀 아니다. 시키는 일이면 다 해야 한다. 할 수 없거나 시간이 모자란 일은 그 일에 익숙한 사람이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모두 내가 해야 한다. 기간제라고 해서 일이 더 적은 건 아니다. 하기 어려운 일, 조금 더 와닿게 표현하자면 건들기 꺼려지는 ‘지저분한’ 일은 거의 다 기간제 근로자가 도맡아 한다. 물론 중요한 일이라면 다른 직원이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 기간제 근로자가 한다.

둘째로, 기간제 근로자는 책임을 덜 질 것이라는 환상. 책임을 덜 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책임 질 일은 응당 책임진다. 기간제 근로자라고 해서 책임을 덜 지진 않는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크다.

셋째로, 기간제 근로자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 회사 생활을 안 해도 된다는 환상. 같은 공간을 쓰기에 당연히 생활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든 싫든 회사 생활, 다르게 말하자면 사회생활도 해야 한다. 다른 직급의 사람들보단 사회생활을 덜 해도 되는 게 맞지만 하긴 해야 한다.

환상 없이 벌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복권은 당첨을 꿈꾸는 사람이 사듯이, 시작부터 환상을 갖지 않는 건 인간이 갖고 있는 특권 하나를 포기하는 셈이다.


회사가 기간제 근로자를 뽑는 이유는 뭘까. 어느 기간 동안 일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지금 있는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뽑는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임시 부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누군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도 않고 사회를 탓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이 시대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임시 부품에게 기대할 만한 게 있을까. 그저 있는 동안만 잘해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 그렇게만 된다면 부품도 만족하지 않을까. 할 수 없는 일까지 임시 부품에게 떠넘긴다면 결국 부품은 망가지고 말 터이다.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만두고 나서 하는 말이라기엔 영 뻔뻔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랬다. 나에겐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을 이루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니까 계획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내가 버티지 못한 건 맞지만, 내가 기간제 근로자로 계약한 것도 맞지만, 뭔가 좀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함께 일하고 같은 규칙 아래에서 움직이지만, 나에겐 그것들을 바꿀 힘이 없다는 것. 영원히 없을 거라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간제 근로자라서 서럽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조금만 상상력을 키워서 기간제 근로자에게 애사심이나 그런 것이 없으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떠날 사람들이다. 지금은 함께 있어도 곧 떠날 사람이다. 좋든 싫든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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