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단념한 적이 있다. 영원히 취업하진 못하리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다시 받은 신체검사 결과 나는 4급을 받아 군대에 돌아갈 일은 없었으나, 그만큼 사회로 들어가는 일도 어려워졌다고 여겼다.
그때 당시 나는 4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취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빨간 색안경을 끼고 세상이 온통 붉다고 한탄한 셈이다.
정말로 그랬을까? 우울증으로 4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취업을 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정말로 그러리라고 믿었다.
취업을 하기 싫어서, 세상에 나가기 싫어서 그렇게 믿은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믿었다. 예컨대‘정신과 4급’이라고 검색하면 우울한 이야기만 쏟아진다. 군대를 가지 않는 대신에 취업을 포기했다는 글들. 지금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엔 그런 글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나는 취업을 포기했었다. 취업할 생각을 꿈도 꾸지 않았다. 취업해야 하는 날이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기를 바랐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 종교로 비유하면 알아듣기 쉽다. 예수를 믿으면 기독교 또는 천주교, 부처를 믿으면 불교. 물론 둘 다 믿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픈 바는 서로 다를 이유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자기를 다르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부적합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누구도 날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고 여겼다. 그런 까닭에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홀로 속만 썩였다. 이십 대 초반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그랬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희극도 없다.
종교를 믿거나 정치 신념이 있거나 하진 않지만 그때 당시 기억 덕분에 믿음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믿기진 않겠지만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그 재능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만 노력해도 남들보다 훨씬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리석다. 어리석은 믿음이다. 그렇다는 걸 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 시시콜콜 따져 물으며 네가 어째서 재능이 없는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한다고 해도, 나는 그 믿음을 잃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믿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믿음은 거창한 게 아니다.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일컫는 믿음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 나는 무엇이라고 말하는 그런 믿음이다.
나는 재능 있는 작가다. 글쓰기는 내가 살아있기에 하지만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고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그런 날이 오기까지 나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만큼 일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이유이자 어딘가에서 일했던 이유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겐 재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해도 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내 천명은 따로 있으니, 적당히 해도 좋다.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라도 내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