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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Nov 10. 2024

10일. 외출, 오랜만

피부보다 익숙하고 깎지 않은 손톱처럼 지저분한 옷을 벗는다. 언젠가 나갈 때 입어야겠다며 옷걸이에 예쁘게 걸어놓은 옷을 입는다. 옷이 생각보다 작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집을 나가기에 앞서 거울을 보지만 제대로 보진 않는다. 요 근래 거울을 본 적이 없기에 거울 보는 일을 지나야 하는 형식처럼 하고 신발장으로 간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퇴한 영웅이 오래전 쓰던 무기를 꺼내듯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낸다. 신발은 먼지로 얼룩지고 흙이 군데군데 박혀 있으나 그대로 신는다.

집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내가 어떻게 입었는지 깨닫는다. 잠시 계단에 주저앉아 멋대로 풀린 신발끈을 묶는다. 오랫동안 까먹고 있던 감각이 하나둘씩 깨어난다.

그때, 조금 두렵다.

오랜만에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두렵다.     


햇빛은 쨍쩅하나 바람이 차갑다. 어딘가 불편할 정도로 춥진 않기에 자전거로 간다. 자전거는 거미줄 범벅이다. 돌보지 않은 사이에 성실한 거미가 지렛대로 삼은 듯하다. 거슬리는 거미줄만 떼어내고 자전거에 오른다. 그래야 훔쳐가지 않을 테니까. 아무리 자전거 훔치는 걸 좋아해도 거미줄로 칭칭 감긴, 더러운 자전거를 훔쳐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고 나서 뒷바퀴 잠금장치를 발바닥으로 밀어서 푼다. 경쾌한 쇳소리가 귀에 닿기도 전에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발이 한 바퀴 돌 때마다 배경에 가까워진다. 집에서 보던 풍경이 서서히 다가온다. 가슴 설레도록 즐거운 사실 하나, 이 거리가 좁혀지는 속도는 오로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계속해서 내달린다. 평생토록 묶여있던 강아지가 운 좋게 탈출한 마냥 집을 떠난다.     


사람이 많은 곳에 다다르니 옷차림이 신경 쓰인다. 조금 더 신경 쓸걸, 하고 생각하지만 때는 늦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챙겨 입었으면 그만이다. 다행히 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 거의 없다. 그들이 나를 본다고 하더라도 난 아무렇지 않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거지꼴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그런 나를 아는 체하는 사람이라면, 비밀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헬스장에 들른다. 사람이 없는 시간대라서, 평일 오후, 사람이 없다. 하고픈 운동을 한다. 다룰 줄 아는 기구는 많진 않지만 아예 없진 않다. 조금이라도 아는 기구를 쓴다. 자세가 올바른지 거울을 보며 운동하지만 자신은 없다. 근육에 힘이 제대로 들어오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른다. 그저 횟수를 맞춰서 할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모두가 그렇지 않지만, 그들 중 몇몇은 생각 없이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고백하곤 한다.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예를 들면, 스트레칭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생각은 무슨. 그냥 하는 거지”라고 말한 김연아 선수가 있겠다.

그런 사람들처럼 그냥 하는 게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트레이너를 만난다. 트레이너는 내게 어째서 이 시간에 왔는지 묻는다. 쉰다고 답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실은 퇴사하고 나서 대놓고 퇴사했다고 말한 적이 거의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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