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뭔가를 그만둔 적이 많다. 군대, 대학교, 직장. 그만둘 수 있는 건 거의 다 그만둬 봤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실망했고,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나는 끈기가 부족하다느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느니,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쉽게 말해서 “어째서 버티질 못하니?”라는 애정 어린 잔소리다.
만약에 내게 용기가 있었다면 되물었을 것이다. “어째서 삶을 버텨야 합니까?”라고. 그걸 버틴다고 해서 뭐가 더 나아지는지 진지하게 물었을 것이다. 내가 불행하고 힘들어서 그만두는 건데, 그걸 버티면 내가 더 행복해 지는가, 라고.
힘들면 그만두고, 조금 더 편한 일자리를 찾는다는 생각,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버티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삶의 조건은 ‘내게 딱 맞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자리는 없다. 어느 자리에 가든 힘들고 버텨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묻고 싶다. 어째서 세상이 그렇게 됐는지. 버텨야만 살 수 있는 곳이 됐는지.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닌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도 중요하다. 체면이라고 한다면 적당한 말이 될까. 사람에겐 지키고 살아야 할 게 많다. 법, 윤리, 체면 따위. 그것들을 지키고 산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더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것들, 그러니까 사람의 의무인 셈이다.
의무는 중요하다. 의무가 없다면 권리도 없고, 자유도 없다. 그 경계선이 불확실하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예컨대 내가 힘들어서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물론 이전 직장에 피해를 줄 순 있고, 그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그것을 알 만큼 내가 성숙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만뒀다며 스스로를 변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을 죄를 진 건 또 아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구박하고 싶진 않다.
퇴사를 거듭할수록, 의무를 저버릴수록, 더 힘들어진 건 나 자신이었다. 이유야 알 수 없다. 사회를 내려다보는 신이 의무를 저버린 나에게 알게 모르게 벌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버티는 삶’에 반기를 들고 싶다. “인생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소리 지르고 싶다. 그러나 그럴 만한 근거가 없다. 버티지 않는 삶을 살아보니까 버티는 삶이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며 살긴 싫다. ‘버티는 삶’이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지만, ‘후회하는 삶’이 잘못됐다고 말할 순 있다.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마지막 퇴사를 후회하진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통장 잔고를 생각할 때면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사무실을 떠올리면 그런 마음은 사그라든다.
나는 또다시 ‘버티지 않기’를 골랐고 그만한 대가를 받고 있다.
만약에 무언가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면, 그만두고 나서 무엇을 할지 반드시 정해야 한다. 절대로 모호해선 안 된다. 그만두고 나서 생기는 시간만큼 어떤 것을 할지 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여러 번 겪은 탓에 그렇다는 걸 잘 알지만, 오늘도 나는 시간을 멍하니 보내고 있다.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여길 것이기 때문에. 나라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