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 진짜 모습

by 한톨

원하지 않더라도 되어야 하는 모습이 있다. 어린아이가 가지는 특권은 별 게 아니라 그런 모습이 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거려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특권을 쓰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상스러운 모습이 되고자 노력했다. 마치 피사체처럼 살았다. 누군가 바라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부단히 애쓰며 자랐다. 그렇게 자란 까닭에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 진짜 모습이 뭔지 모르겠다.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게임으로 따지면 최종보스처럼 내가 갈 길을 가로막고 있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저 수줍음 많이 타는 모습이 나일까, 아니면 어려서부터 그랬지만 줄곧 숨기며 자랐던 ‘끼 많은 모습’이 나일까, 또 다른 모습이 있을까, 그 모습이 진짜 나일까.

오래전부터 그에 따른 고민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그동안 그렇게 살지 않아서……” 결론은 “날 이상하게 볼 거야! 그건 싫어”였다. 그렇기에 변화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이자 바라는 말이기도 했다.

차선책으로 ‘어쩔 수 없는 변화 또는 특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조부모 장례식 때문에 학교에 나가지 않으면 좋아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일상의 ‘변화’가 좋았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좋았다. 조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은 전혀 따지지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을 만큼 조부모님과 내가 접점이 없었기도 했지만, 그때 당시 나는 사회적 인식이나 그런 걸 따질 만한 지능이 모자랐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싫어한다. 눈치가 없거나 사회성이 뒤떨어지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일까. 수줍음이 많아서 학교에서 말조차 하지 못 하던 모습일까, 아니면 변화와 특권을 사랑해서 조부모 장례식을 슬퍼하지 않은 내 모습일까?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억누르며 자란 탓에 뭐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것을 찾아 나서고 싶진 않다. 어린 시절을 찾고자 젊은 시절을 보낸 탓에 내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다가올 늙은 겨울을 위해 쓸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내 모습은 지금 내 모습이다. 사실 가짜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완전 외향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춤을 말도 안 되게 잘 추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하다못해 지금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것에 지쳤다. 그런 게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내가 늙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는 뜻일까. 둘이 같은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피사체처럼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날 나는 인간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아낼 수 없다. 심지어 문자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몸뿐이다.

따라서 지금 내가 어떠한지가 나를 대신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나일지라도 결국 ‘나’다. 어쩔 수 없는 것, 그것이 특권이나 변화가 아니라 아쉽지만 그런대로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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