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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숙경 Nov 29. 2023

사랑 아닌 것들 모두 잊었다

감포종점


감포종점

                -박숙경


추령재를 지나면서부터 더 설레었네

포구에 닿으면
온 바다가 내 것인 양 들뜬 기분으로 읍내를 통과해야 하네

문득, 예리한 시선에 포착된 감포 종점
밤이 깊어야 했지만 분명 한낮이었고
나도 모르게 마포 종점이 입술을 빠져나왔네
있을 리 만무한 갈곳 없는 밤 전차를 호출하는 사이
갈 곳 바쁜 자동차들은 녹슨 간판이 걸린 다방 거리를 지나가네

불행하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고
오가는 사람들 눈빛에 담긴 무수한 기다림도 읽지 못했네

차들은 수평선 쪽으로 자꾸 달아나네

내가 이다음 지나가는 사람이 될 때 궂은비 정도는 내려주겠지

포구 맞은편 그야말로 옛날식 항구 다방 구석진 자리 물 날린 비로드 의자 위에 쓸데없이 명랑해지는 엉덩이를 주저앉히고 퀴퀴한 냄새 따윈 모른 체하며 늙은 마담의 주름진 손으로 건네는 칡차나 마시면서 연락선 뱃고동 소리가 얼마나 서글픈지 들어 보고 싶었네

생각 없이 지나가다 우연히 눈 맞은 종점을 생각하면
어디서 나처럼 늙어가지 싶은 첫사랑 하나쯤은 있어야 될 것만 같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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