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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숙경 Nov 30. 2023

사랑 아닌 것들 모두 잊었다

지금은 그저 하염없기로 하고

지금은 그저 하염없기로 하고      ㅡ신두리 사구砂丘


                                               -박숙경


안녕, 잘 있었나요


오래된 시간의 자국과

표범장지뱀과 갯메와 물떼새의 둥지까지


꼬리뼈를 건드리면 바람이 이는지

햇살을 안으면 자국이 생겨나는지는 궁금하지 않아요


순비기 언덕에서는

아무도 마주친 누구에게 말 걸지 않아요


빨간 지붕과 세 개의 등대와 이백 개의 풍경은 옵션


서로가 서로를 낳는 중이라 말할 때

석양은 오래 참아온 말을 풀어 수채화를 그려요


파도가 밑줄 긋고 달아날 때마다

비밀의 문이 늘어나면

어린 별을 꺼내 물병자리를 만들어요


일찍 잠이 들면 파도에 뺨을 맞을 것만 같은 밤

가위눌리지 않은 시간을 지나

아침이 생겨날 때까지 자줏빛 달리아와는 잠시 이별


풍경을 머금은 입술을 위하여

지금은 그저 하염없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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