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추어야만 하는 이유
모두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정작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망설인다. 왜냐고? 한 번도 자유로운 선택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책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나의 선택은 사회의 기준과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기준과 가치관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사실은 대다수가 가는 편한 길이며 남의 길이다. 이게 왜 편한 길이냐 하면 자신의 가치관을 뒤집는 부정을 통해 영혼이 성장하는 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고 순조롭고 평탄한 길처럼 보인다.
진짜 위기는 그 길에 막혔을 때 시작된다. 관성을 가로막는 인생의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때는 진짜 자기 전부를 부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항상 두 가지의 옵션이 존재한다. 스스로의 성찰과 치열한 자기 고민 속에서 선택하든가 아니면 외부의 강압적인 요소가 작용하여 평탄했던 나의 길을 가로막든가
자유를 꿈꾸었다. 내 안의 부자유를 느꼈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성과 의식 본능과 감각이 치열하게 싸우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방향을 제시하는 건 이성이다.
세 가지 자유의 길이 보였다.
첫 번째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자유였다.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고 원하는 자유를 찾아가는 것
두 번째 만해 한용운의 자유였다. 그것은 복종의 자유였다. 이성의 초월을 통한 절대자에게로의 귀의가 될 것이다.
세 번째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이다. 내 야생과 본능에 최대한 충실한 것.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 세 가지의 자유를 놓고 치열하게 모색했다.
카뮈를 만났다. 그는 말한다. 나는 세상에게 묻지만 세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알고 싶었다. 삶의 의미를.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침묵한다. 괴롭다. 당신은 이 부조리를 견디라고 한다. 답을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 답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니기에 또다시 답을 찾아 헤맬 거라고. 비로소 이 말의 참뜻을 알았다. 순수이성으로는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음을. 순수이성의 끝은 허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오로지 실천이성만이 나를 깨달음으로 이끌 거라는 것을. 인생은 끊임없는 모색이며 방황이며 갈등이며 긴장이다. 나의 이성은 답을 찾아 헤매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영원한 안식은 죽음에 가서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생각을 멈추고 느끼기로 했다. 감각에 충실하기로 창조적인 삶을 살기로. 감각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강력한 통로이다. 창조는 고통과 즐거움의 모순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의미 있는 삶의 방향임을. 그리고 또 하나 맛을 아는 것. 지미(知味)의 삶은 사는 것. 내 안에 존재하는 미의 감각을 향유하는 삶을 사는 것.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느끼며 맛을 아는 삶을 사는 것. 앞으로 또 어디로 길이 열려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완성을 말하지 말라는 것. 영원히 계속될 여정이라는 사실이다. 이 여정의 완성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I am a mountain.
I am a big mountain that protects you.
The mountain is always in the same place.
The mountains do not move or change.
Whenever you are having a hard time, rest in my arms.
I am a big green mountain.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변함없이 푸르고 큰 산이고 싶었다.
작사: Hesse
작곡: Suno AI
촬영: Hesse
편집: He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