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에 꽃을 보며
(식물의 두뇌)

by 임경환

더운 지방에서 길을 가다 문득 붉은 꽃잎을 보고 다가갔다.

가까이 가니 붉은 꽃잎보다 더 이쁜 하얗고 노란 앙증맞은 꽃이

붉은 꽃잎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꽃잎 속에 다시 더 이쁜 꽃이 있었다.

부겐빌레아야!

온통 붉은 꽃잎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향기와 꿀을 품고 있는 자그마한 진짜 꽃이 있다.

종이처럼 얇고 화려한 붉은 꽃은 사실 꽃이 아니고

잎이 마치 꽃인 양 위장한 모습이다.


자신의 진짜 꽃은 너무나 멋지지만,

너무 작아서 벌이나 나비들이 알아채지 못할 거 같아서

잎이 꽃처럼 위장하고 수분 매개체를 끌어들여 가까이 오게 한 후

그때서야 속에 있는 진짜 꽃이

‘얘들아! 나 여기에 꿀과 꽃가루를 많이 갖고 있으니, 내게로 오렴’ 하는 거다.

저런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타국에서 보니 또 새롭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꽃이 있다.

수국이다.

수국의 진짜 꽃은 너무 작아서 벌이나 나비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꽃 주변의 꽃받침을

마치 꽃처럼 크고 화려하게 키워 수분 매개곤충을 유혹한다.

그리고 막상 곤충이 다가오면

‘얘들아, 미안하다. 사실은 내가 꿀을 갖고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저 안에 작고 예쁜 꽃이 꿀을 많이 품고 있으니, 거기로 가렴’

거기에 더해서

벌이 찾아와 작은 진짜 꽃에서 수분과 수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이 가짜 꽃들이 180도 회전하여 꽃잎이 뒤집어진다.

또 한 번 곤충을 향해 안내를 한다.

‘난 이제 결혼했고 아이까지 가졌으니 내게 관심을 가지지 말고

다른 꽃을 찾아보렴’


기가 막힌다.

수국의 머리 씀이나 마음 씀이 얼마나 영리하고 아름다운가?

동물은 움직이지만, 식물은 한자리에 서 있다.

그 어떤 역경도 움직여서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서서

맞서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

그러니 내 생각엔 식물의 두뇌는 동물의 두뇌보다 더 정교하고 뛰어날 거 같다.

그런데 인간이 꽃을 더 이쁘게 만든답시고

수국을 건드려서 작고 예쁜 꽃을 없애고

가짜 꽃을 크게 만든 기형종을 만들어 퍼뜨린다.

말하자면 겉만 화려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변종을 만들어낸다.

두뇌가 뛰어나고 스스로 알아서 이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잘 맺는 수국에게 몹쓸 짓을 하는 거다.

그러지 말자.

가짜 부겐빌레아를 본 적이 없다.

가짜 수국을 만드는 걸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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