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3
선생님 이번 3주간도 자조적인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 외에 눈 떠있는 시간 중 상당 부분을 무료하게 흘려보냈습니다. 어쩌면 무료하다는 표현보단, 무례하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단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수시로 올라오는 불안감은 마치 제 발에 채워진 족쇄와도 같고, 등대 없는 망망대해 같은 삶에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느낌이 듭니다.
하루 중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슬픈 시간이기도 합니다. 순식간에 불어난 살들과 의지 없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됐나 싶다가도 이내 사회 탓, 환경 탓을 하며 합리화를 하는 제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휴대전화와 텔레비전의 화면 속 현란함에 눈과 귀를 마비시켜야만 불안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아 참, 매번 있는 일이라 별일은 아니지만요. 턱에 여드름이 났었습니다. 호르몬 탓인지 계속되는 마스크 착용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곪아버린 붉은색의 염증을 란셋으로 찔렀습니다. 스스로요. 그랬더니 무덤처럼 볼록하게 솟은 곳에서 송골송골 핏방울이 맺히고,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검붉은 피가 면봉에 스며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삼일 뒤 있을 약속을 생각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연고를 두껍게 발랐습니다. 외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투명한 물감 같은 것을 덕지덕지 올려봤습니다. 약속을 생각해 준 터인지 무덤은 가라앉고 전날보다 덜한 흔적만 남아있었습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외상은 진전이 보이는데, 마음에 생긴 내상은 어떤 약을 써도 차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저 스스로에게 섭섭할 지경이었습니다. 터지지 않아 흘려보내지 못해 무덤같이 부풀어버린 마음을 찔러볼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것은, 그 속의 고약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버티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처방해 주신 약 덕분에 지나간 삶을 무한대로 곱씹지 않게 되어서 조금은 살 거 같습니다만, 아직은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진두지휘할 줄 아는 호모사피엔스는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진화가 덜 된 것일까요 아니면 퇴화가 된 것일까요. 아니면...
남들보다 아는 게 많고 할 줄 아는 것이 많다고 근거도 없는 자신감만 내세워 반짝거리다가도, 저 깊은 어딘가의 무지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일생입니다. 어쩌면 그 재주들이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봐야 하는 삶에 망설임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제 이름대로는 살고 있지 못한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놨습니다. 이 힘듦의 근원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누가 와도 이 근원을 속 시원히 찾아내주리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어쩌면 선생님은 알아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편지를 써내려 봤습니다.
선생님도 항상 무탈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