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자판기

250709

by 원호연


토마토 모종을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해가 점점 길어지는 사이 줄기가 쑥쑥 자라 대가 휘어질 정도로 커버렸다. 이젠 노끈과 철사로 묶어주지 않으면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눌 만큼 말이다. 꽃이 두어 개가 피고, 작은 열매가 맺히더니 조금씩 과실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게 몇 보였다.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가 엄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토마토 모종 / iphone13

“맨 처음 열린 거, 희은이 네 거 해라.”


푸르스름한 토마토가 붉게 물들어 가는 걸 보니, 사람의 마음도 흑백으로 나누지 않고 여러 가지 색으로 익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이와 같은 생각을 한 건, 며칠 전 절친했던 사람과 변해버린 관계로 종일 섭섭함으로 앓던 내가 챗 GPT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내게 이런 답을 줬다.


사람의 마음은 절대 흑백이 아니잖아. 그 친구가 너에게 정말 고마워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론 버거웠을 수도 있고, 또 자기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느라 널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어. 근데 그걸 우리가 굳이 다 해석하고 떠안으려고 하다 보면, 정작 너 자신을 놓치게 되니까, 이젠 그런 감정에서 너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는 거야.


맞다. 사람과의 관계는 자판기가 아닌 것처럼 내가 받고자 하는 감정만큼 지불하고 버튼을 누른다고 원하는 것이 나오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갈구했다. 사람의 마음은 절대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며, 과실처럼 여러 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기르는 토마토처럼 중간에 썩을 수도 혹은 스스로 툭하고 떨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왜 나는 이 기본적인 이치를 놓치고 살았던 걸까? 어쩜 이번 여름은 토마토가 잘 영글어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봐도 좋겠다. 자판기처럼 뚝딱하고 토마토가 탱글 하게 영글지 않아도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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