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막 생긴 김치, 먹어도 될까?
김치를 꺼냈을 때 표면에 하얀 막이 생겨 있으면 곰팡이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하얀 막은 독성이 없는 ‘골마지’라는 물질이다. 세계김치연구소에 따르면 골마지는 김치가 발효 후기 단계에 들어서면서 유산균 활동이 줄고, 효모가 김치 표면에서 증식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김치가 공기 중에 노출되거나 보관 온도가 4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더 잘 발생한다. 원재료 상태가 좋지 않거나 양념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고춧가루나 젓갈 같은 양념이 깨끗하게 정제되지 않았을 때도 골마지가 잘 생긴다.
이 하얀 막은 보기에는 곰팡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독성이 없다. 표면에 생긴 막만 걷어내고, 김치를 물에 잘 헹군 후 찌개나 볶음에 조리하면 먹는 데 문제가 없다. 다만 초록빛이나 검정빛을 띄거나, 실처럼 길게 뻗은 형태라면 곰팡이일 가능성이 높으니 이 경우엔 바로 버려야 한다.
김치뿐 아니라 된장, 간장, 피클 같은 발효식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식품안전정보원에 접수된 사례에서도 샐러드 속 피클이나 깍두기 표면에 흰 물질이 생겼다는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김치가 수분이 많고 온도에 민감한 음식인 만큼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골마지를 방지하려면 김치 위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랩이나 비닐을 김치 표면에 밀착시켜 덮는 것이다. 김치 국물이 위까지 올라와서 김치가 완전히 잠긴 상태가 되면 더 효과적이다. 냉장 보관 온도도 중요하다. 4도 이하로 유지해야 유산균 활동이 적절히 유지되며 골마지 발생도 줄어든다.
배추나 무는 세척을 꼼꼼히 해야 하고, 양념은 정제된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보관 기준만 잘 지켜도 김치의 맛과 식감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김치는 단순한 발효식품을 넘어서는 가치를 갖고 있다. 유네스코는 2013년 한국의 김장 문화를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김장은 단순한 요리 행위를 넘어서 공동체가 함께 모여 김치를 담그며 나누는 문화로서 의미를 가진다. 삼국시대부터 김치의 존재가 기록될 정도로 긴 역사를 가졌고, 배추김치, 무김치, 열무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고들빼기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계속 커지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김치 효능’, ‘김치 영양’, ‘김치와 면역력’, ‘김치와 암 예방’ 같은 주제가 검색어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엔 김치의 기능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유선미 연구원, 이해정 교수 등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김치 유산균은 장내 유해균 증식을 억제하고 유익균 증식을 촉진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농촌진흥원에 따르면 김치를 하루에 210g씩 1주일 동안 섭취한 건강한 성인은 15g만 먹은 사람보다 공복혈당과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6주간 배추김치 동결건조 분말을 30g씩 섭취한 사람의 경우, 혈중 중성지방과 LDL-콜레스테롤이 줄고 HDL-콜레스테롤은 증가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유산균이 장 속 환경을 개선하고 혈관에 쌓인 노폐물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김치를 일주일간 150g씩 먹은 20~30대 여성은 15g 섭취 그룹에 비해 장내 유해균이 줄고 유익균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200g씩 2주 간격으로 김치를 섭취한 성인을 대상으로 8주간 관찰한 연구에서도 유익한 장내 효소가 증가하고, 유해한 효소는 감소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김치는 체중 감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과체중이나 비만인을 대상으로 숙성된 김치 300g/일과 신선한 김치 300g/일을 각각 먹도록 했더니 숙성된 김치를 섭취한 사람들은 4주 만에 체지방률, 혈압, 혈당, 총콜레스테롤 농도 모두 유의하게 감소했다. 당뇨 전 단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숙성 김치를 먹은 그룹이 체중, BMI, 허리둘레 감소 효과를 보였다.
김치가 짜서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오해가 여전히 많지만,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혈압이 오른다는 근거는 없다. 한국인유전체역학조사사업을 통해 5932명을 12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김치 섭취와 고혈압 발생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김치 속 유산균과 칼륨이 나트륨 배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김치 1회 제공량당 나트륨 함량은 232mg으로 라면(1933mg), 햄(1080mg), 치즈(226.8mg)보다 낮다. 김치보다 인스턴트식품 속 나트륨을 줄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지금은 대부분 배추로 김장을 하지만 과거엔 무가 주 재료였다. 지금처럼 배추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된 건 결구배추 덕분이다. 우장춘 박사가 개량한 이 품종은 잎이 단단하고 크며, 수분이 풍부해 절여도 쉽게 무르지 않는다. 김장 시기는 하루 평균기온이 4도 이하로 떨어지고, 최저기온이 0도 이하일 때가 적당하다. 김장은 담근 뒤 3~5도에서 2~3주 숙성해야 제 맛이 난다.
배추는 겉잎의 녹색과 흰색이 뚜렷하고, 줄기를 눌렀을 때 단단한 것이 좋다. 너무 크면 고소한 맛이 덜하므로 2~3kg 정도의 배추가 적당하다. 양념은 천일염과 태양초 고춧가루를 쓰고, 마늘과 젓갈은 잡내 없이 깔끔한 것으로 준비한다. 농촌진흥청이 권장한 김치종합양념소 비율은 절임배추 100g 기준 고춧가루 4.5g, 마늘 2g이다.
김치는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위에 우거지를 덮거나 비닐, 밀폐용기를 이용하는 게 좋다. 큰 용기에 담기보다는 나눠 담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해산물이나 풀은 빨리 시는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오래 보관할 김치에는 넣지 않는다. 잘 담은 김치는 김치냉장고에서 약 6개월, 일반 냉장고에서는 3개월까지도 보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