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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괴롭힌 건 '건강한 음식'이었다

좋은 것끼리 섞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by 헬스코어데일리

어릴 적부터 나는 식사에 큰 욕심이 없었다. 아침은 대체로 거르고, 점심은 빨리 때우고, 저녁은 배고픈 만큼만 먹는,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속이 점점 까다로워졌다.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잘 넘기고, 나는 하루 종일 더부룩하거나 트림이 멈추질 않았다. 이상했다. 잘못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건강식이라 불리는 것들만 골라 먹었는데도 말이다.


그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조합’에 있었다.

12312313.jpg 바나나와 우유 조합. / 헬스코어데일리

언젠가 무심코 바나나와 우유를 함께 먹고 출근길에 올랐던 날이 있다. 허기진 속에 스무디 한 잔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아침 같았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부터 뭔가 이상했다. 명치 끝이 묵직했고,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트림이 잦았다. 오전 내내 집중이 안 되고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속이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느껴졌달까.


그날 이후로 나는 먹은 것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뭘 먹어서 이렇게 된 걸까. 바나나? 우유? 둘 다 건강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결국 스무디를 만든 내 습관이 문제였던 걸까.


알고 보니 바나나와 우유는 위장에서 소화되는 속도도 방식도 달랐다. 바나나는 식이섬유와 당 성분이 장에서 천천히 분해되며 가스를 만들고, 우유는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위산 과다나 복통을 일으킬 수 있었다. 특히 공복엔 더욱 그렇다고 했다. 몸에 좋은 것을 섞었다는 안일한 생각이, 내 하루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음식을 ‘조합’이라는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식탁 위의 습관들


어렸을 적 우리 집 식탁은 늘 정갈했다. 엄마는 식사 뒤엔 꼭 과일을 깎아 내오셨다. 계절 따라 수박, 참외, 포도, 귤이 식탁 끝에 올라오곤 했다. 우리는 밥을 다 먹기도 전에 과일을 기다렸다. 달고 시원한 그 맛은 어린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면, 식후 과일이 늘 속을 편하게 해줬던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밥을 먹고 난 뒤 이유 없는 트림이나 복부팽만을 느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과일은 소화 속도가 빠른 반면, 밥이나 단백질은 훨씬 천천히 소화된다. 과일이 그 속에서 기다리다 발효되면, 위장도 어지럽다. 그렇게 건강한 식습관이라는 게, 의외로 우리 몸에는 버거운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식후에 과일을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오전 중간이나 오후 간식으로 과일을 따로 챙겼다. 신기하게도 속이 편해졌다. 몸이 말 없이 보내던 신호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합이라는 예민한 감각


대학 시절,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친구와 함께 샐러드를 먹은 적이 있다. 그녀는 병아리콩과 치즈를 듬뿍 얹은 샐러드를 만들었고, 나는 옆에서 그걸 따라 했다. 보기엔 근사했다. 단백질과 섬유질을 고루 갖춘 구성. 그런데 우리는 둘 다 그날 오후 수업 시간에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장이 부글거렸고, 예고 없이 올라오는 트림이 참기 힘들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그 조합은 장에서 꽤 복잡한 반응을 일으킨다. 콩은 발효가 잘 되는 식품이고, 치즈는 유당을 포함하고 있어 둘 다 장내 가스를 만든다. 장이 민감한 사람에겐 그 조합이 복부팽만과 불편함으로 돌아온다. 그 후로 나는 콩요리를 만들 때 치즈를 넣지 않는다. 대신 상큼한 채소를 곁들인다. 깻잎이나 오이, 부추 같은 것들. 씹히는 맛도 좋고, 무엇보다 속이 편하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갔다. 음식도 인간관계처럼 서로 잘 맞는 궁합이 있고, 아무리 좋다는 재료라도 함께일 때 상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익숙한 불편함


한국인에게 밥과 고기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삼겹살엔 볶음밥, 갈비찜엔 흰쌀밥. 당연한 조합처럼 여겨진다. 나 역시 고기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밥을 찾곤 했다. 고소한 육즙과 밥알의 조화는 말할 것도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찾아오는 무거움은 늘 어김없었다. 위가 더부룩하고,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 그건 포만감이라기보다, 뭔가 ‘과한’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밥과 고기 역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화되는 영양소였다. 탄수화물은 빠르게, 단백질은 천천히. 위는 그 둘을 동시에 소화시키느라 애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고기를 먹을 땐 채소를 곁들인다. 상추, 무생채, 오이. 밥은 그날따라 컨디션에 따라 조절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천히 먹는다. 빠르게 먹는 식습관은 어떤 조합보다도 위장을 혹사시키니까. 익숙한 조합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몸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지나치게 포개진 익숙함은, 때로 배려 없는 폭력이 된다.


건강이라는 이름 아래


요거트와 과일. 아마 가장 많이 소비되는 건강한 아침일 것이다. SNS 어디를 둘러봐도 그 조합은 빠지지 않는다. 색감도 좋고, 맛도 상큼하다. 나도 한때 그 조합에 푹 빠졌었다. 바나나, 망고, 딸기, 그리고 플레인 요거트.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근사한 그릇을 완성하곤 했다.


그런데 자주 속이 울렁거렸다. 이유 없는 트림도 잦았고, 한동안 알레르기처럼 코가 막히는 증상도 반복됐다. 요거트 속 유산균과 과일 속 당분이 만나면 장내 발효를 촉진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유산균이 장 건강에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다. 장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가스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건강이라는 이름 아래 무심코 선택한 조합이, 내 몸엔 과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은 요거트를 먹을 때 그냥 플레인으로만 먹는다. 가끔은 방울토마토를 곁들이기도 하고, 오이를 얇게 썰어 올리기도 한다. 색은 덜 예쁘지만, 속은 훨씬 편안하다. 보기 좋은 것보다 중요한 건 결국, 내 몸이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내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


음식을 대하는 내 태도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맛이나 건강, 영양소만을 기준으로 음식을 고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몸이 편안해하는 것,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까지 함께 고려한다. 무엇보다 조합과 타이밍을 신경 쓴다.


예전엔 건강식을 챙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건강한 재료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다. 삶이 그렇듯, 음식도 결국은 균형의 문제다.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아무리 좋아도 갈등을 낳고, 맞지 않는 타이밍은 몸을 소란스럽게 한다.


위장은 참 솔직하다. 조용히 항의하고, 꾸준히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무시할 때마다, 어딘가 어긋난 하루를 겪게 된다. 속이 불편했던 그날의 이유가 꼭 뻔한 자극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좋은 것끼리 함께 있다고 해서 좋은 하루가 되는 건 아니니까. 결국 중요한 건, 내 안의 리듬에 얼마나 귀 기울이느냐 하는 것. 그러니 오늘도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만의 식탁을 만든다. 내 속이 편안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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