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씻기 전, 이 한 가지는 꼭 기억한다

블루베리는 무조건 흐르는 물에 세척

by 헬스코어데일리

아침부터 기온이 심상치 않았다.

창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바닥은 벌써 끈적이고, 냉장고 문을 열면 안쪽에서 싸늘한 공기가 반갑게 뿜어져 나왔다.

이런 날엔 시원한 과일이 제일 먼저 손에 잡힌다.

얼마 전 마트에서 샀던 블루베리 한 통이,

냉장고 맨 안쪽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블루베리.jpg 블루베리를 세척하는 모습. / 헬스코어데일리

투명한 용기 속에서 파란 열매들이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겉껍질엔 흰색 가루가 옅게 앉아 있었고,

몇 알은 서로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오래 두면 물러지기 쉽다는 걸 알기에

나는 채반을 꺼내고 조심스레 블루베리를 쏟아냈다.

동글동글한 열매 몇 개가 바닥을 또르르 굴러다녔다.


예전 같았으면 찬물을 받아 푹 담가뒀을 것이다.

딸기나 포도처럼, 오래 헹구면 더 깨끗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이 과일을 가장 쉽게 망치는 방법이었다.


블루베리는 껍질이 얇고 조직이 부드러워

물을 오래 머금지 못한다.

겉면의 미세한 틈 사이로 수분이 스며들면

금세 과육이 물러지고 단맛도 사라진다.

그걸 모르고 나는 몇 번이나,

맛없는 블루베리를 내 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먹기 직전에만 흐르는 찬물로 살짝 헹군다.

손끝으로 가볍게 굴리듯 씻고,

수분은 키친타월로 톡톡 눌러 닦아낸다.

닦는다는 말보단, 조심스럽게 건드린다는 쪽이 맞다.

너무 세게 문지르면 껍질이 터지거나,

속살이 쑥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루다 보면

과일 하나를 대하는 손길이 달라진다.

서두르지 않고, 성급하지 않게.

몇 알 안 되는 작은 열매들이지만

그 속엔 제법 많은 주의가 들어 있다.


조금 웃긴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블루베리를 통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됐다.

말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흐려지는 감정이 있고,

시선을 오래 얹어두면 무거워지는 순간도 있다.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결을 무디게 해버린 적이 있진 않았을까.


물속에 오래 담갔다 흐물흐물해진 블루베리를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좋은 마음이 항상 좋은 결과를 주진 않는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블루베리는 냉장 보관도 오래되지 않는다.

3일, 길어야 4일이 지나면 껍질이 눅눅해지고

단맛도 줄어든다.

그 전에 먹지 않으면

그 특유의 탱탱한 질감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젠 한꺼번에 많이 사지 않는다.

먹을 만큼만,

딱 그 주에 다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산다.

시원한 물에 헹궈 건져내고

수분을 닦아낸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입에 넣는다.

손끝에서 입안으로 이어지는 그 짧은 경로가

점점 더 소중해진다.


가끔은 남는 날도 있다.

그럴 땐 깨끗이 씻어 물기를 완전히 말린 뒤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로 넣는다.

냉동 블루베리는 해동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

요거트 위에 얹거나,

믹서기에 넣고 스무디를 만들기도 한다.

차가운 열매가 입안에서 사각하고 부서지는 느낌이

꽤 괜찮다.


냉동해도 안토시아닌이나 비타민 C는 꽤 유지된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굳이 따져보진 않았다.

다만 그 차가운 단맛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사람들은 블루베리를 슈퍼푸드라고 부른다.

눈에 좋고, 기억력에 도움을 주고,

피로 회복에도 좋다고.

그 모든 말들이 맞을 수도 있고,

어쩌면 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과일이다.

너무 세게 쥐면 망가지고,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흐릿해진다.

잘 다뤘을 때만 비로소

속에 담긴 향과 단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요즘 나는

그걸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해 본다.

오래 묻지 않고,

가볍게 닦아내고,

지나치게 붙들지 않으면서도

딱 지금 필요한 만큼만 머무르는 태도.


싱크대 앞에서 블루베리 몇 알을 굴리던 아침,

그 작은 열매가

오늘 하루를 천천히 열어줬다.

과일 하나가 주는 배움이 이토록 조용하고,

또 깊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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