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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Jan 18. 2024

너무 많은 슬픔

2024년 1월 18일

그날 서울의 어느 구 어느 동에서는


李가 이사를 떠났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기어코 마지막 이사를 갔노라

李의 유일한 친구 金이 말했다


혼자 살던 작은 방 벽지에는

그처럼 늙은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그처럼 늙은 앉은뱅이 책상은

쑤시는 다리로 위태롭게 서 있었고

늙은 책상의 머리 위에는

언젠가 쓰여진 편지들이 백발처럼 앉아 있었다


이마에는

딸에게

발에는

사랑한다

라고 적힌 편지들


가야할 곳을 몰라 고향에서 죽을 운명의 편지들은

저마다 불평했다

읽히지 못하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李를 원망한다고 했다


이윽고 노인의 작은 방은 조용해졌다

늙은 편지가 이렇게 말한 뒤로


李의 딸이 그보다 먼저 이사를 갔어


편지들은 그제야 알아버렸다

자신의 몸에 적힌 날짜가 모두 같은 이유를

그동안 떠날 수 없었던 이유를


편지들은 자신의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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