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또 다른 설렘

by 조은주

2015년 김형석 교수님이 96세이실 때 TV를 통해 처음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늙고 힘없는 노교수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차분한 목소리 안에서 삶의 확고한 철학과 강한 의지가 느껴져서였다. 100년 가까운 인생을 사시며 후대를 위해 애쓰시고 계시니, 그 세월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하고도 남는다.

교수님의 소식은 수시로 TV를 통해 강연이나 생활하시는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어쩌면 100세에 가까운 교수님의 모습과 말씀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느림과 지루함속에서 내가 고민하던 그 무언가를 교수님이 해결해 주실 것만 같았다.


직장을 다니고 집안살림을 챙기느라 유명인의 강연을 들으러 가는 것은 나에겐 호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기간에 교수님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교수님이 살아계신 것도 대단하시지만, 아직도 강연을 하러 다니시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왠지 모를 설렘이었다.

처음 교수님을 알고 무려 10년이 지났다. 교수님은 106세가 되신 것이다.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부인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다며 98세가 되면 강연을 줄이고 신문에 여자친구 공고를 내야겠다는 농담을 하셔서 웃음을 지었던 생각이 난다. 아직까지 여자친구는 없으신 것으로 보이지만 '여자친구'라는 인간적 관계를 통해 스스로 오래 사는 인생에 대한 고단함과 인간이기에 가져야 하는 여유를 보여 주신 것이다.

김형석 교수님의 강연 모습

이번 강연에서 교수님은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하였다. 한 시간 반의 강연 내내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강연내용이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전개되었다. 중간중간에 내용들을 강조하기 위해 정렬한 항목들을 설명할 때도 뒤바뀜 없이 말씀하셨다. 100세가 넘는 연세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호흡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강연의 내용에 윤동주와 동기였고, 김일성(김성주)은 초등학교 선배였다는 얘기는 교수님이 살아있는 화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직접 듣고 울림을 받았다는 얘기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살아오신 교수님의 시대상과 민족과 나라에 대한 고심이 전해져 왔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거친 시대를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교수님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자신의 인생사를 얘기하시면서 말미에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누구라도 사는 동안 자신의 안녕을 추구하며 살게 되지만, 교수님의 '작은 도움을 준다'란 말씀은 풍요가 넘치는 지금의 세상에서 사회 구성원 각자가 품어야 할 씨앗 같은 말씀이었다.

교수님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다"라는 말씀도 남기신다. 크리스천이신 교수님은 최종의 인간적 정신을 사랑으로 귀결시키셨다.


인생을 100년을 넘게 살면 종교, 민족, 국가에 대해 어떠한 생각이 들까? 사회, 가족, 나 자신에게 어떤 마음일까? 나는 과연 그 깊이를 나중에라도 알 수 있을까?


철학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106년을 고뇌와 상념으로 살아오시며 시대를 겪으신 노인의 말은 무시가 안 된다. 그리고 그 생각 안에 민족과 국가, 사람과 사랑이 있는 신념을 가진 노교수의 말은 더더욱 무시가 안 된다.


김형석 교수님,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십니다.

하느님 곁으로 가시는 날까지 당신의 말씀대로 다른 이에게 작은 도움을 주시길 바라며, 저 또한 당신의 말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 다음 글에서 김형석 교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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