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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냥이 Nov 09. 2023

멈추고, 생각부터 좀 해보자

잠깐 멈추세요. 그리고 다시 시작해요.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치 일에 중독 된 듯 재밌게 하고 있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집에 숨었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잤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실패한 인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한숨이 나왔다. ‘또 살아있구나 싫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아침, 잠에서 깨어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이 같은 나에게 내가 말을 하고 있었다.     


“잉여인간”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약해 진걸까 화가 났다. ‘마음을 해석하는 방법을 알면?’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내가 싫었다. 그래. 심리학! 심리학이 답을 찾아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 심리학 도서 몇 권을 주문했다. 하루를 기다리려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자동차 키를 챙겼다. 가까운 작은도서관에서 책 몇 권을 대출하고 나오던 길에 ‘타인의 밑줄’이라는 독서모임 홍보지가 눈에 들어왔다.      


타인의 밑줄.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건가. 책을 같이 읽어 보면 마음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참여 신청을 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 바로 앞은 시장이다. 오랜만에 보는 많은 사람들이 낯설었다. 어딘가 바쁘게 걷는 사람, 상추를 파는 할머니, 아이를 안고 달래는 예쁜 엄마가 보였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타인의 밑줄에서 처음으로 함께 읽은 책은 이진우 교수의 ‘니체의 인생 강의’였다. EBS 강의 영상을 틀어놓고 첫 장을 펼쳤다.     


‘왜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가도 문득 이런 질문에 맞닥뜨린 적이 있지 않나요? 이는 삶에 대한 우리의 ‘본능’이 살아 있다는 증거죠.     


본능이라고? 삶에 대한 나의 본능은 답을 알고 있을까. 마치 당시 내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계획한 대로 살아가지 않을 때 허무함을 느낀다. 하지만 계획대로 잘 풀린 성공한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단지 목표 달성에 대한 실패감 때문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존의 허무감’이라는 것을 만나게 되는데. ‘너의 삶은 가치가 없다! 너의 삶은 의미가 없다!’ 라는 본능의 소리를 듣게 되된다고 한다.      


‘나는 실패했다.' 


학원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 몇 달간 머릿속에 끊임없이 들리던 소리다. 절대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점점 더 안 좋아질 거라는 확신 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밤 이대로 영원히 잠들기를 바랐다. 아침에 깨지 않길 기도하는 매일이 이어졌다. 그런데 실패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내 이 마음의 변화가 누구나 겪는 실존에 대한 고민이라면 니체는 답을 알고 있다는 건가? 책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믿어온 가치가 믿지 못할 것이 되었다는 의미다. 나는 어떤 신념으로 20년을 살아왔는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나는 멈추지 않고 달리게 만든 강렬한 믿음이었다. 내가 열심히 살면 모든 일이 잘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노력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학교에 다닐 때 까지다. 마치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는 식의 공식은 삶의 실전에 적용할 수 없다.     


철학으로 시작한 함께 읽기는 심리학을 지나 인권도서로 이어졌다. 매주 수요일 오전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 동안 만나던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타인의 밑줄을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얘기를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결혼 16년 만에 나는 처음으로 시댁욕이란 걸 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의 책 친구들은 분개하고 함께 울어주었다. 진심이 담긴 위로는 마음을 녹인다. 책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하루도 집을 나서지 않던 내가 수요일마다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울고 웃는 내가 되어 있었다.      


 ‘내 얽힌 삶의 매듭은 내가 풀어야지.’ 내 얽힌 운명의 시작을 찾고 싶었다. 이상하게 결혼과 시댁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나오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행복했던 날보다 절망하고 분노한 기억이 더 많은 내 결혼생활을 먼저 돌아보았다. 매일 울었던 3년, 매일 유서를 썼던 10년, 그리고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며 유지하는 이 결혼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종종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우리만의 고정된 시각, 즉 '고정관념'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프레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상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제약이기도 하다.     


K-장녀의 ‘비합리적인 착함’의 틀은 아주 어릴 때 만들어진다. 동생을 잘 돌보는 성실한 아이는 ‘착하다’라는 칭찬을 먹고 살아간다. [착한아이 신드롬] 다른 사람, 특히 부모를 걱정시키면 안 된다. 책임감은 아주 중요한 삶의 자세다. 내가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은 절대적인 신념인 셈이다. 그들의 인생에 ‘이혼’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내 결혼이 잘못되었음을 느낀 건, 결혼 직후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부모님과 책임감을 모르는 남편은 가정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을 흔들었다. 시어머니는 우울증이 심했다.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 매일 밤 취해서 들어오거나, 집에서 혼자 술을 드셨다.      


시부모님과 함께 2층 주택에 살고 있던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시어머니의 방문을 불만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집은 1층이었는데, 현관문은 24시간 오픈된 채로 있어야 했다. 새벽 2시에도 아침 6시에도 어머님은 원하실 때마다 우리 집에 오셨다. 늘 불안했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를 막지 못했다. 어머님이 너무 늦은 시간 귀가하는 날, 철대문이 철컹 닫히는 소리가 나면 나는 침대로 뛰었다. 자는 척 등을 돌리고 누워있으면 남편은 어머니를 달래며 2층으로 모시고 갔다. 멍청이 같은 놈.     


남편은 중독에 약했다. 늘 게임, 낚시, 술에 빠져 있었다. 일주일에 반 이상을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남편과, 아무 때나 집에 오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잘 지내보려고 내 마음을 숨기고 웃었다. 가짜 웃음과 친절이 몸에 벤 생활은 그렇게 시작 되었나보다.      


시어머니는 감정 기복이 크셨고, 감정적 폭력을 서슴지 않는 분이셨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시아버지에게 욕설을 하거나 피로 마무리 되는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가족들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이어갔다. 이상했다. 아무도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다시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이 미친건지 내가 미친건지 구분되지 않았다. 이 안에서 살다보면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과 닮아갈까 겁이 났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다. 내가 선택한 방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아 않는 것, 침묵이었다. 나와 조금만 가까워도 알 것이다.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 내가 결혼생활 내내 들었던 말은 ‘평생가야 한 마디 하지 않는 며느리’였다. 마음으로 그들을 경멸하고, 방관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이들과 살아내기도 바빴다.     


나르시시스트의 보편적인 특징 중 하나는 자식에 대한 집착이다. 그들은 자신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어머니는 자식과 손자에게 집착을 보였다. 매 주 금요일이면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토요일 오전에 돌아왔다. 한 주 가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매우 서운해 하셨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그러려니 하고 수년 간 토요일 오전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금요일 하루 아이들이 없어 텅 빈 것 같던 집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일주일에 하루 밤새도록 혼자 있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반드시 진실일 수는 없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일 년이 지날 즘, 아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폭행하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술에 취해 거실에 앉아 양치하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잡아 얼굴을 바닥에 내리 찍었다던가, 식탁 의자로 방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위협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한다. 경상도에서도 바닷가 쪽에 살았던 어머니 눈에 서울 며느리는 무척 순해 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쏟아내야 하는 분이셨는데, 말씀의 시작은 늘 이랬다. “기분 나빠 하지 말고 들어라. 내가 이런 말 할 소린 아니지만..” 할소리가 아닌 기분 나빠질 말을 왜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대부분 부정적인 비난의 말들이었다. 


이 집에 시집와서 내가 잘 한 일은 거의 없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일을 했지만, 20년 후 돌아온 피드는 “네가 얼마나 벌었다고” 였다. 전남편과 전 시어머니는 뇌구조가 일치하나보다. 생각의 크기도 똑같고, 말도 똑같이 밉상으로 한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런 상황 속에서, 남편은 나를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했다. 시어머니의 물질적 지원을 이유로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가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이들이 어린 워킹맘에게 모든 육아를 전가하며 매일 술 취해 들어오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주말 낚시를 반대하면, 다른 분들의 아내들을 들먹이며 너만 불만이라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나를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5년 지기 친구 말이, 나와 처음 같이 식사를 하던 그날 내 입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거다.     


“저는 사회 부적응자라서 사람들과 잘 지내질 못하는 사람이래요. 우리 남편이 그랬는데요. 제 생각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저런 말을 내가 하고 다녔다고? 그러고 보니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았고,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혼자가 편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삶을 잠시 멈추고 나를 찾아 나섰다. 참 긴 시간을 보낸 뒤였다.   


‘나’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딸이라면, 엄마라면, 선생님이라면 이라는 역할에 충실해지다 보면, (K 장녀, K 장남 잘 들으세요.) 나다운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딸이라는, 엄마라는 선생님이라는 역할이 모두 사라진다면 ‘나’도 함께 사라질까?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만큼 ‘나’는 강한 생명력을 가졌고, 우리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는 본능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때로는 몸을 아프게 하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는 극단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일을 멈추게 했다. 그 덕에 나는  한 걸음 떨어져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의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정리했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나는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나씩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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