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며^^

by 홍승표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을 하루 앞두고 늦가을 여행을 떠났습니다. 계룡산 자락엘 들어서니 가을 끝자락을 수놓은 단풍이 발길을 붙잡았지요. 고즈넉한 오솔길을 돌아가는 쓸쓸한 가을 뒤태가 애잔했습니다. 반라(半裸)의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느새 마음은 산이 되고 강이 되고 사유(思惟)의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늦가을 한가운데서 여유롭고 넉넉한 가락들이 서로들 얼싸안고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었지요. 짙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하늘로 올라 한 점 구름이 되었습니다. 북소리 두 둥둥 울리며 하늘로, 하늘로 날아올라 한 점 구름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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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게 물었습니다. ‘산다는 건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일까?’화두를 던졌지요. 구름은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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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魅惑)한 햇살과 하늘빛으로 색동옷을 갈아입고 춤추던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엔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아놓고 한마당 큰 잔치를 벌였지요. 풍년을 이루게 해준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그동안 땀 흘린 노고를 위로하고 자축했습니다. 더 가진 사람이나 덜 가진 사람이나 함께 어울려 넉넉한 가을을 만끽했지요. 곳곳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농악 소리 높여가며 동네사람들 모두 신명 나게 원을 그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잔치는 동산 위에 뜬 달마저 술에 취해 불그레해질 때까지 늦도록 이어지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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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지요. 흔들리는 갈대처럼 삶에 대한 의문부호가 쉴 틈 없이 날아들어 몸부림치게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깊어지고 고민도 깊어지는 것이지요. 가을은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더 절절하게 그리워지는 계절이지요. 지난 추석, 산에 들어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예순둘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와 홀로 지내시다 아버지 곁으로 가신 어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알 콩 달 콩 지내시겠지요. 맑고 화사한 햇살과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빛 때문에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 오히려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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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모를 처량함에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지요. 분명히 팔다리는 움직이고 있는데 마음은 산자락을 붙잡고 있었지요. 뒷전에서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 더욱 그러했을 겁니다.

“산 노을에 두둥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아버지 애창곡이었지요.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 부모님을 만나니 모처럼 마음이 푸근했지요. 가을을 가을답게 보내려면 넉넉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유가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지요.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양보하고 배려하고 나누는 축복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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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은 말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웠지요. 한낮에도 별이 내리는 눈빛 환한 늦가을, 얼굴 붉힌 그림자하나 빈 수레를 끌고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천 만 구비 그리움 끝에 닿아 있었지요. 소슬바람 한 자락이 지나는 자리 갈대꽃이 춤을 추고 철새 한 무리가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가 애처롭게 보였지요.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끝자락은 떠나는 나그네의 발길처럼 쓸쓸하고 애달프게 보였습니다. 겨울이 오면 그와 함께 살아야겠지요. 땅거미 내려앉는 길, 멀어져가는 가을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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