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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08. 2024

나쁜 감정을 풀어내는 법

14.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어느 날 꽃마을 미사 중에, 밉고 화나는 감정을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강론 말씀이 있었다.

 "화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봉헌 자체로 아주 좋은 기도가 된다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기도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미사를 아들들과 같이 봤었다.


마음이 힘들거나 화가 날 때면 '봉헌기도를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기도하는 걸 자주 잊었다.





# 가족여행


남편이 아프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고, 아들들과 시간을 맞춰 가족여행을 가곤 했다.


웬만하면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 그였지만 항암을 시작하면서 장거리 운전이 힘들어졌고, 자연스레 운전대는 아들들에게 넘어갔다.


아들들은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렌터카를 운전해 본 경험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고, 집중해야 한다며 차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를 줄이고 말도 못 걸게 했다. 


서투른 모습에 남편이 운전할 때는 없던 불안감이 몰려왔만,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서포트에 곧 안심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아들들 아빠에게 운전 습관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엄마, 내가 형보다 더 잘하지?" 큰애가 운전할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막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큰아들이 눈치 못 채게 엄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

난 운전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우리 집에서 운전 꼴찌다. 지금도 운전할 때면 큰아들에게 잔소리 폭탄을 맞곤 한다. 내 운전이 영 불안하고 어설퍼 보이나 보다. 다행인 건, 내가 장거리를 운전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떠난 가족 여행지에서는 종종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식단 관리를 해야 하는 암 환자와 맛있는 게 많은 여행지, 어쩌면 다툼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에도 고기보다 야채를 좋아한다. 그런 나는 자꾸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고, 그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아니, 고기보다 야채를 많이 먹으라니까, 그게 힘들어?

내가 당신이랑 바뀌었으면 좋겠어. 난 평생 풀만 먹고살라고 해도 자신 있는데..."


암 발병 후 그는, 담배나 술은 단번에 끊어냈는데 고기는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나는 채소 위주의 식단이 암을 치유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의 식단 관리는 투병 기간 내내 나의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바닷가 벤치에서 그와 나란히 앉았다.  

다음 주 친구들 모임이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말했다.

"이제 식단 관리도 더 잘하고 모임도 줄이자."

그는 대답을 피했고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신은 지금 자기 몸을 돌봐야지, 친구가 중요해?"

"몸도 중요하고 친구도 중요하지, 다 잘할 수 있다니까"

"모임 가면 또 고기 먹고, 친구들이 담배라도 피울까 봐 걱정된단 말이야"


물론 그를 위해 배려하고 조심하겠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고, 내가 없는 곳에서 몸에 안 좋은 것들을 잔뜩 먹고 올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은 그가 집에 올 때까지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친구도 만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게 오히려 치유에 도움이 된다며, 듣고 보면 맞는 말 같은 이상한 논리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내 말 좀 들어!!


나는 소리를 질렀다.

예전 같으면 그도 같이 화를 냈을 텐데, 아프고부터는 내가 노력하고 있는 걸 알아서인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작은 아들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엄마 화내지 마. 아빠 말도 들어보고,

가족여행 와서 싸우지 말고..."


이어서 큰아들도 와서 왜 그러냐며 팔을 잡아끌었지만, 이미 그에 대한 서운함으로 잔뜩 화가 난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와 나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작은 아들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짝!"


그 소리에 우리 가족의 시선이 돌아갔고, 작은아들은 이어서 이야기했다.

 "자, 빨리 화난 거 봉헌해!"


큰아들은 그때 동생이 천재인 줄 알았다고 했다.

큰아들이  '쟤는 진짜 천재인가'하는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봤고,

작은아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화나는 마음 하느님께 봉헌해,
둘이 손잡고 바다 보면서 빨리 봉헌해~"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계속 화내야 할 거 같은데 웃음이 삐죽삐죽 나올 때...


'기도 해야겠네..' 마음먹었을 때, 이미 내 속의 '화'는 하느님께서 가져가 버리신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아들은 어느새 아빠에게 가서 봉헌을 종용하고 있었고, 그는 자기는 하나도 화난 게 없다며 버티고 있었다.


"솔직히 아빠도 아주 조금 서운하긴 했지?"

진짜 서운한 게 하나도 없냐는 아들들의 말에 

끝내 아니라던 그가 결국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은.. 조금? 친구 만나지 말라고 할 때 아주 조금?"


우리 모두 웃음이 터져버렸다.

신부님 말씀을 불쑥 꺼낸 아들의 재치에,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쭈뼛거리던 우리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봉헌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화나고 서운한 마음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때 바다는 참 넓고 조용했다. 그 바다가 우리를 품어주는 듯 너그럽게 느껴졌다.




그가 아프면서, 나는 하던 모임을 모두 탈퇴하거나 중지했다. 주로 애들 학부모 모임이나 친목 모임이었는데, 시간도 없었지만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일이 나에겐 무의미했다. 내 신경은 온통 그의 간병과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친정이나 시댁 모임도 반갑지 않았다. 그가 가족들과 만남을 워낙 좋아해서 따라주긴 했지만, 가족 모임 때면 불편함이 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일상적인 말도 때로는 상처가 되었고, 그가 아픈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 괜찮은 척하기도 싫었다.


특히 가족 모임을 하게 되면 외식을 했는데, 밖의 음식이 달갑지 않았다. 가능하면 집에서 깔끔하게 먹는 게 제일 안심이 되던 때였다. 같이 식사를 할 때면 어머님은 먹던 숟가락으로 자꾸만 그에게 음식을 덜어주셨다. 내 찌푸려진 인상에 가족들도 눈치를 보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으면 누구보다 이해해 주셨을 가족들인데... 내가 마음을 닫고 말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뾰족한 나를 이해해 주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듬어 주신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후에도 내가 누군가의 험담을 하거나 불평불만을 얘기할 때면, 아들들은 봉헌하라는 말을 종종 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바닷가에서 터졌던 웃음이 생각난다.


어디선가 나쁜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아들의 한마디를 전해본다.


"자, 빨리 화난 거 봉헌해!"




#사진 - 그날 그 바닷가에서, 그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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