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Jul 01. 2024

이상한 나라의 꽃마을

13.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가끔 다른 차원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너무 행복한 순간이면 내가 잠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게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상상을 하곤 했다.


성모 꽃마을이 그랬다.


그곳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 같았고 평화롭고 조용하고 기쁨이 가득한 곳이었다.




#  성모꽃마을


항암을 하던 중간에 지인 소개로 꽃마을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었는데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가 암 환자가 될 줄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성모 꽃마을은, 23년간 암 환자들만을 위해 봉사해 오신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암 치유 센터이다.


꽃마을을 방문해 신부님과 상담하고 교육에 참여했다. 부부 동반 입소가 가능했기에 꽃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며 5박 6일 교육을 받았다. 20여 년간 암  위해 일구어 놓으신 꽃마을은 곳곳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우리는 항암과 꽃마을 치유 프로그램을 병행하기로 했다.



# 꽃마을 면역 테라피와 웃음 테라피


꽃마을에서는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테라피로 족욕(각탕기)과 게르마늄 온열 의자를 권장한다. 체온을 1도 높이면 몸의 면역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온열요법으로 몸을 따듯하게 해서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는 방법이다. 그도 족욕과 온열의자를 하며 체온을 높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웃음 테라피는 라이브 공연과 장기 자랑이 이어진다. 우리 부부도 듀엣으로 참가해 그동안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사회자의 재치 있는 입담과 다른 팀의 공연을 보며 암 발병 후 가장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꽃마을이라면 매일 웃으며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꽃마을에서 생활하며 가장 편했던 부분이 식사가 해결된다는 점이었다. 매일 자연식 위주의 신선한 식단이 준비되어 있었고,  꽃마을 밥은 특별히 더 맛있었다.


앨리스의 몸을 작아지게 했던 버섯처럼, 꽃마을 식사는 암을 작아지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버섯인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금지 음식 리스트를 적어 놓고 먹는 것에 잔소리가 많았었다. 건강한 식단을 만든다며 소금도 잘 안 쓰고 간도 밍밍하게 해 주던 때였다. 그에겐 꽃마을 음식이 더 반가웠을 터였다. 그는 맛있게 잘 먹었고 난 감사했다.


꽃마을은 9시 아침 미사를 보며 일과가 시작된다. 꽃마을에서는 환우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그들은 늘 웃고 있고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환우들이기에 동료애도 특별하다. 이곳에서 암이 치유된 환자도 많고, 암을 안고 잘 살아가는 환우들도 많다. 무엇보다 천국이 있다고 굳게 믿고 신앙 안에 하나 되는 곳이었다.


2020년 2월 코로나로 전 세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점점 확산되며 병원을 오가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암 환자에게 질병은 바로 응급상황으로 가는 길이어서 매번 위생관리와 외부 접촉에 신중해야 했다. 병원은 방역에 비상 체제였고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면 폐쇄되는 병원이 생기기도 했다. 코로나19, 다시는 지구상에 그런 전염병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체육부장


암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지만, 6개월의 항암을 끝으로 우리는 꽃마을에서 치유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꽃마을에 정식 입소하며 그는 꽃마을 체육부장을 맡았다. 그곳 환우들은 그를 문화체육부 장관님으로 불렀다. 땀 흘리며 참여하는 체육대회가 꽃마을 천사들에게 행복한 이벤트였고, 마음 건강에도 기여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탁구를 즐겼고, 환우들에게 탁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아쉽게도 꽃마을에는 그의 적수가 없어 보였다. 신부님이 탁구를 잘하시긴 했지만, 그는 신부님과 탁구 경기를 하고 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신부님이 눈치 못 채게 져주고 있어."

"ㅎㅎㅎ 에이~ 진짜?"

"진짜라니까, 져주기 힘들다니까.ㅎㅎㅎ"

신부님이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이의를 제기하실 수도 있다. 그럴 리 없다고,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였다고.

작년에 두 아들과 함께 찾아뵈었을 때, 그와 탁구 하던 시간을 그리워하셨다. 신부님은 그의 신학교 입학 동기 이기도 하시다. 신학생 때부터 책 보다 침통을 들고 다니셨고, 동기들도 아프거나 체하면 신부님을 먼저 찾았다고 한다.


두 아들은 가끔 꽃마을에 와서 미사도 보고 꽃마을 밥도 같이 먹으며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꽃마을 옆에는 정원이 넓은 애견 카페가 있었는데, 그때 키우던 반려견 '호야'와 아들들이 신나게 뛰어놀기도 했다. 우리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머님은 그를 위해 가끔 쑥 인절미를 만들어 보내 주셨고, 꽃마을 정원에서 꽃마을 식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 작은 나눔에 고맙다는 인사가 몇 배로 돌아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꽃마을에 있었던 8개월 동안 그는 항암으로부터 자유로웠고 건재했다. 좋아하는 골프도 하고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며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잘해 나갔다.


우리는 그 평화가 계속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해 9, 코로나가 세계를 더욱 강타하며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도 급증하기 시작했고

결국, 꽃마을도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     


하트 여왕은 앨리스를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앨리스는 몸이 커지는 버섯을 먹고, 몸이 점점 커지며 두려움도 없어진다. 앨리스는 카드 병정들의 공격을 받다가, 언니가 부르는 소리에 꿈에서 깬다.


이 모든 게 꿈이었어


우리는 꽃마을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비눗방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호야'



이전 12화 다시 오뚝이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