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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15. 2024

아버지의 마음

15.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 그리운 아버지     


어쩌다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이면, 그는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결혼 후 큰아들이 5살 때, 시아버님이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간암 수술 후, 당뇨 합병증으로 한 달 만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 옆에 누워, 아버지와의 어릴 적 추억을 하나씩 꺼내놓곤 했다.

     

기계 체조하다 다리를 다쳤을 때, 그를 업고 매일 학교를 등교시키셨던 일.

막내아들을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지 않아,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기계체조를 그만두게 한 일.

아버님이 소 키우던 시절 소여물을 먹이던 얘기.  

신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반대하시며,

그가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길 바라셨다는 얘기 등을 들려주었다.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던 그의 모습이 너무도 선연하다.     


내 기억에도 아버님은 참 다정한 분이셨다. 생전에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하실 때면, 큰아들을 꼭 무릎에 앉히고 식사하셨다. 또, 일주일에 두세 번 초정 약수를 떠다 주셨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에 무거운 물통을 들고 올라오셨다. 정수기가 없던 시절 그 물로 밥도 짓고 식수를 대신했다. 아이들이 잔병치레를 할 때도 출근하는 그를 대신에 우리를 병원에 데려다주셨다.      


그리운 아버지를 암으로 보내고 자신도 암에 걸렸으니, 두 아들을 생각하며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슴 한편이 꽉 막혀온다.






# 아빠와 아들


꽃마을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해 가을, 그는 건강을 위해 집 근처로 산책을 다녔다. 아파트 앞산에 밤나무가 많았는데, 산책하러 나갔다가 시작한 밤 줍기가 재미있었는지, 한동안은 밤 줍기에 열중했다.


하루는 막내와 나갔다가 모기에 잔뜩 물려온 그에게 잔소리 늘어놓았다.

“그렇게 모기가 많으면 얼른 들어오지, 긁다가 상처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는 괜찮다며, 가방에 한가득 담겨 있는 밤을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막내와 같이 간 그는, 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밤을 주웠다고 한다, 막내도 신이 나서 “엄마, 아빠가 알려준 곳에 밤이 진짜 많아!”라고 말하며 주머니에서 계속 밤을 꺼내 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꺼내놓은 밤을 살펴본 나는 “어이구, 이따 삶아 줄 테니 맛있나 먹어보자” 하며 밤을 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막내는 마침 집 근처 회사에서 인턴십이 마무리되었고, 입사 전까지 텀이 생겼다. 그 시간을 나와 남편 옆에 꼭 붙어있었다. 병원 갈 때도 나 대신에 막내가 운전하니 안심이 되었고, 밥도 매끼 같이 먹으니 식사 시간도 더 즐거웠다. 아빠를 닮아 애교 많은 막내가 집에 있으니 여러모로 든든하고 좋았다.  


취직을 앞둔 막내는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런 막내의 모습이 마냥 흐뭇했는지 다 잘할 거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회사 선택을 고민할 때도, 남편은 당시 집과 가까웠던 회사에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 회사는 예전에 그가 다녔던 회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막내가 계속 집에 있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의 바람대로 막내는 집에서 가까운 회사에 입사했고, 덕분에 "아빠 다녀올게" 하고 출근하는 아들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었다. 그에게나 나에게나 참 감사한 일이었다.



첫 월급 받고 아빠에게 보낸 편지
다 큰 아들의 손 글씨가 다소 어설프다. 그래도 마음만은 백만 불이다. ㅎㅎ
이상하게도 아들들, 조카들은 모두 글씨를 잘 못 쓰는데, 이 때문에 명절 때면 서로 자기가 더 글씨를 잘 쓴다며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막내는 첫 월급을 5만원권으로 하나하나 포장해서, 편지와 함께 예쁜 상자에 담아 우리에게 선물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선물 포장 신기하면서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기특하고 뿌듯했다. 장식장 잘 보이는 곳에 넣어 두고 때때로 바라보았고, 그도 용돈박스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없던 입맛도 생긴다고 했다.




주말이면 석사과정 중인 큰아들도 서울에서 내려왔다.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 내려올까 말까였는데, 남편이 아프면서 매주 내려오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아프고 나서 제일 좋은 점이 가족들이 자주 모이는 거라고 했다.     


운동신경이 없는 아들들 탁구 배드민턴을 치자 하면, 그는 기분 좋게 따라나섰다. 아픈 몸이었음에도 아들들에게 한 번을 지지 않는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만연했다. 두 아들은 계속 지는 게 야속했는지 그에게 반칙이라고 외쳐보지만, 그런 아들들 모습에 호탕하게 웃을 뿐 인정해 주지 않았다. 


가끔은 골프를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아들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아 보였다. 체력적으로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지만, 아들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지속되길,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나눌 수 있기를 우리 가족 모두 간절히 바랐다.   

  


가족이 함께 할 때면 그는 큰아들에게 노래 신청을 하곤 했다.

큰아들은 친구들 결혼식 축가를 부를 만큼 노래를 곧 잘하는데, 종종 우리의 신청곡을 불러주.     


그런 큰아들이, 어버이날 우리에게 노래 선물을 해 주었는데, 라디의 엄마라는 곡이었다.      

아들 목소리로 듣는 가사 말이 너무 좋아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빠로 개사해서 불러준 노래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처음 당신을 만났죠

만나자마자 울었죠

기뻐서 그랬는지

슬퍼서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드릴 것이 없었기에

그저 받기만 했죠

그러고도 그땐 고마움을 몰랐죠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네요

아빠 이름만 불러도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죠

모든 걸 주고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당신께

무엇을 드려야 할지

아빠, 나의 아버지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가장 소중한 누구보다 아름다운

당신의 나의 나의 아버지


당시 큰아들은 청주로 내려오는 고속버스에서 가사를 외우면서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번에 맞이하는 어버이날이,

아버지가 함께하는 마지막 어버이날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노래를 불렀다고..      


그날 그 노래를 들으며, 남편은 아들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나 아빠나, 그리고 나도... 우리 가족은 참 울보였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사진: 막내가 만들어서 선물한 용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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