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에게 관심 좀 갖아주세요.
요즘 '숲길 등산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등산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자주 가는데 산과 나무 그리고 새와 꽃을 보면서 그냥 재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뭔가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어서 백화점에 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딸이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수원역에 있는 애경백화점에 가기 위해서 팔달산을 넘어서 가기로 했다. 산 쪽으로 가는 길가에 비비추가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 씨앗을 터트리고 있었다.
어느 카페 화단에 곱게 핀 금잔화에는 꿀을 맛있게 빨고 있는 나비가 한참 사진을 찍어도 모른 척 꿀 빠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어디 선다 국화의 향기가 나서 돌아보니 소국이 짖은 향기를 뿜어내며 역시 가을은 국화지 하며 뽐내는 모습같이 보인다. 이렇게 꽃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딸이 "엄마 오늘은 나에게 관심 좀 갖아주세요"한다. 딸아이는 집에 많은 화분들한테도 불만이 많다. 왜냐하면 매일 바쁘다면서 화분에 물 줄 것 걱정하고 있다고 화분수를 좀 줄이고 자기한테 신경 좀 써 달라고 한다.
오랜만에 낮에 산에 올라오니까 예쁜 가을꽃들이 너무 많이 피어있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 곱지만은 안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나면 나에게 이야기해주던 습관이 있어서 함께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물병에 물도 가득 받아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직 단풍은 안 들었지만 산길 주변에 가을꽃들이 피는 것을 보면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산길을 걷는 기분은 어제나 즐겁다. 딸아이도 어려서부터 산과 들로 데리고 다녀서인지 산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백화점에 도착했다. 나는 등산용품 매장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모자를 써봤다. 그런데 처음에 써본 검은색 모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 들렸던 매장에서 모자를 다시 써보고 사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매장 점원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하는 말이 "이 모자는 모델이 쓰고 있어서 다 나가고 이것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모델이 쓰고 있으면 금방 나간다니까요." 한다. 그래서 매장을 둘러보니까 영화배우가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모자를 쓰고 거울을 보니까 내 모습이 모델보다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 그 모자를 쓰고 있으니까 진짜 등산 지도사 같아요"하며 씽긋 웃는 딸의 모습이 오늘따라 짓궂게 보인다.
우리는 지하 식품 매장에 들렀다. 딸아이가 배가 고픈지 연신 음식들을 바라본다 그래서 백화점에 오면 맛있는 음식도 먹어야 기분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엄마 저기 케밥 하나 사주세요" 해서 3개를 사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경기도청 화단의 밴치에 앉아서 딸아이는 케밥 하나를 다 먹고 "엄마 우리 화단이 이만큼 컸으면 좋겠어요" 하더니 이다음에 이렇게 큰 화단을 가꿔야겠다고 한다.
도청에서 팔달산으로 오르면서 내가 발견해 노았던 길로 딸을 데리고 걸어갔다. 개모 시 풀이 있는 것을 보면서 도심에 있는 산인데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딸아이는 처음 와보는 길인데 너무 좋다고 한다. "엄마 저를 어렸을 때 여러 캠프에 많이 보내 주셨잖아요. 그런데 엄마랑 다녔던 곳이 더 재미있어서 캠프는 너무 지루했었요. 그래서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놀기도 했어요." 한다.
우리는 숲 속을 걸으며 어린 시절 아빠 회사일로 지방에 내려가 살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웃 엄마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나무이야기도 하고, 저녁 무렵 냇가에서 물고기가 튀어 올라오는 모습도 보고, 비가 온 후 커다란 무지개를 보며 즐거워하던 모습, 자전거를 타고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시골길을 가다가 소가 있는 곳이 있으면 서서 소에게 먹이도 먹여보고, 5일장이 서는 날은 장터를 몇 바퀴씩 돌며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개와 닭을 파는 곳에 앉아서 동물들을 바라봤던 재미 등을 이야기하며 숲길을 걸어서 올라오니 수원화성이 보였다.
수원화성을 바라보면 우리의 정서와 닮아있다. 큰 돌과 작은 돌들이 서로를 위해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고 틈을 메꿔가며 쌓은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서포루의 모습을 보면 아래 있는 것은 돌로 쌓은 모습이고 위의 벽돌은 정약용이 중국에서 벽돌 만드는 기술을 들여와 서양식으로 쌓은 벽돌이다. 딸아이는 비탈길을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앞서 잘 걸어간다.
우리는 서장대로 가지 않고 성곽 밖으로 가기로 했다. 이곳은 팔달산중에서 가장 소나무가 많고 바위가 많은 곳이다. 바윗길을 걷다 보니 바람이 써늘하게 느껴진다. 가족단위로 바위에 올라앉아 담소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 나온 사람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우리는 바위에 앉아서 소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동영상을 찍는데 산과 도로가 가까이 있다 보니 차의 소음도 들리고 어디에선가 망치질하는 소리도 들린다.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산길을 내려오는데 딸아이는 어렸을 때는 이 길이 많이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왔는데 히나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
"엄마 백화점 갔다 이렇게 산길로 다니는 사람도 흔치 않겠죠?" 가끔 차를 가지고 갈 때도 있지만 우린 자주 이렇게 산길을 걸어서 쇼핑을 다닌다. 오늘은 갈대가 보고 싶어서 이 쪽 길로 오는데 그래도 가끔은 와본 길이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올해는 비가 많이 오고 오늘 날씨가 흐려서인지 갈대가 그리 곱지 않다. 가을의 문턱에서 오랜만에 딸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산길을 걷는 것도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