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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Aug 15. 2023

출산예정일에 태풍 예보라니

119 처음 눌러봄

11호 태풍 '힌남노'가 '초강력' 태풍으로 발달했습니다. 태풍은 다음 주 제주 남쪽 먼 해상까지 올라올 것으로 예측됐는데요. 진로는 아직 유동적이지만, 세력이 워낙 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9월, 뉴스에서는 태풍 ‘힌남노’의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보여줬다. 시간이 갈수록 ‘힌남노’는 일반 태풍에서 초강력 태풍으로 진화했고 예상경로가 유동적이었다가 우리나라로 북상하여 직접 영향권에 들 것이라고 했다. 매년 여름 반복되는 태풍 소식이지만 이번에는 특히 마음을 졸이며 태풍예보를 지켜봤다. 태풍이 온다는 그날이 바로 출산예정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태풍이 온다고 병원 문을 닫는 건 아니다. 다만, 산부인과가 집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타 지역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가까운 산부인과를 가지 왜 이렇게 먼 곳을 다니느냐. 소문난 명의가 있는 병원이라서? 여성전문 의사가 있는 곳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인구 10만이 안 되는 초고령 지방(a.k.a. 촌)이다. 집 근처에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은 하지 않는 곳이었고 색 바랜 간판을 보니 (맛집도 아니고 병원이니만큼) 신뢰가 가지 않아 임신 초기부터 인근 지역의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었다.  


 집에서 50km 떨어진 곳,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타고 이동해야만 한다. 분만이 임박한 급박한 상황을 대비해서 최대한 빨리 달렸을 때는 40분 정도 걸렸다.  


 만약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할 때 진통이 심한 상태라면?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급히 가야 한다면? 급박한 상황 속에서 태풍이 몰아칠 때 운전이 가능할지 걱정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매일 태풍 예보를 살펴보면서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1) 병원 근처 모텔을 잡는다.

 아예 운전 걱정을 하지 않도록 병원 근처 모텔방을 잡아놓고 대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진통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집 밖에서 계속 기다리는 것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2) 119에 전화한다.

 뉴스에서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구급차로 이송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얼핏 났다. 그런데 119에 이런 일로 전화해도 되는 건가? 관할 지역이 있지 않을까? 나는 타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어나 보자 싶어서 생애 최초로 119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119 안전센터입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태풍이 왔을 때 타 지역으로 산모 이송이 가능하고 ‘119 안심콜 서비스’에 사전 가입을 해두고 산부인과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위급상황 발생 시 도움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응급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최대한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일단 예정일까지 상황을 지켜보다가 출산예정일 전날 병원 근처에 방을 잡고 대기하고 만약  응급 상황 발생 시 119에 전화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런데 며칠 뒤 출산예정일보다 3일 앞서 진통이 시작되었고 아직 태풍이 오기 전이라 약한 비만 내리는 새벽 안전하고 빠르게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출산 후, 병원에서 회복하면서 뉴스를 보니 태풍으로 인한 피해상황을 보도하고 있었고 창문 밖으로 계속해서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조금만 늦게 진통이 시작됐다면 어땠을지 생각하니 아찔했다.  


 면회시간이 되어 신생아실로 가보니, 누에고치처럼 속싸개로 쌓인 작은 아기가 누워있었다. 엄마아빠가 걱정하는 것을 알았는지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특하게도 효도를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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