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았다. 아기를 낳은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소감은? 아기를 만났다는 감격스러움도, 기쁨의 눈물도 아닌 이제 아픈 건 다 끝났다는 후련함이었다. (출산의 고통 뒤에도 잇달아 새로운 고통들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었다.)
새벽 1시 출산 후, 어서 빨리 병실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자궁수축에 문제가 있어서 경과를 지켜보느라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병실로 이동했다. 밤새 출산하느라 온몸은 땀범벅이었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해서 곧바로 자고 싶었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고 마지막으로 소변을 보고 알려달라는 숙제를 받았다.
얼른 소변을 보고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변기에 앉아 아무리 기다려도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닌가 싶어서 물을 먹은 뒤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잠시 후 숙제 검사를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로 방문하셨다. 나는 오줌이 나오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말했고 세면대에 물을 계속 틀어놓고 다시 시도해 보라는 꿀팁을 얻었다.
졸졸졸에서 콸콸콸까지. 세면대에 물을 아무리 틀어도, 물소리에 아무리 집중을 해도, 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소변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병실 침대와 화장실 변기를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분명히 오줌이 마려운데 아무리 힘을 줘도 오줌이 나오지를 않으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마치 방광이 마비가 된 것 같았다.
힘을 줘서 오줌이 찔끔 나오기는 했으나 그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지쳐버린 나는 찔끔 나오긴 했으니 오줌이 조금 나왔다고 간호사실에 전화로 알렸다.
찔끔 이긴 하지만 숙제를 하긴 했으니 이제 잠을 좀 자볼까 하는 그 순간. 병실에 방문한 간호사 선생님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최첨단 소변스캔기계(?)였다. 배에 기계를 갖다 대자 방광에 소변이 얼마나 들어찼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세상에나. 방광의 소변양을 정확한 수치로 알려주니 숙제를 제대로 안 한 게 바로 들통나버렸다.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방광만 가득 차게 된 나는 결국 소변줄이란 것을 꽂게 되었다. 어렴풋이 제왕절개를 하면 소변줄을 꽂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는데 나는 자연분만을 하고도 소변줄이라니. 왠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소변줄은 처음 꽂을 때도 엄청난 고통이지만 하고 나서도 계속 불편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계속 모인 소변을 비워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긴 하지만 소변 비우기는 남편이 해줬기 때문에 속 편하게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임신 중기 이후로 밤마다 소변이 마려워서 깨고, 만삭 때는 한두 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야 했기 때문에 밤마다 화장실 가느라 수면의 질이 바닥이었다. 그런데 소변줄을 하니 밤에 화장실 갈 걱정은 없다는 게 유일하게 좋았다.
다음날, 담당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오셨고 오늘은 꼭 소변을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또 소변줄을 다시 꽂아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들었다. 소변줄을 다시 꽂을 바에 지금 꽂힌 소변줄을 안 뽑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결국 소변줄을 빼고 비장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방광이 아닌 남의 방광 같았던 낯선 방광의 느낌이었기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세면대에 물을 졸졸 틀고는 온 정신을 소변보기에 집중했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쉽게 소변보기에 성공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어제는 대체 왜 이렇게 안 됐던 걸까. 그토록 바라던 소변보기에 성공하고 난 뒤 남편과 간호사 선생님과 이 기쁨을 나눴다. 남편은 더 이상 소변통을 비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산부인과에는 출산의 기쁨만 있는 줄 알았더니 배뇨의 기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