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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Feb 20. 2024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취준생에겐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이라는 말이 있다. 일자리는 물론이고 취업 준비를 위한 학원 등 지방에는 없는 것이 서울에는 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 소도시여서 자격증 시험 하나를 치더라도 시험장이 있는 대도시로 시간과 체력과 돈을 쓰며 이동해야 했다. 때문에 모든 게 갖춰진 서울에 사는 것이 취업 스펙이라는 말에 꽤나 공감이 갔었다.


어느덧 아기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친정 가까이 사는 것이 하나의 육아 스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 전부터 아기가 어릴수록 친정 가까운 것이 최고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기를 키우면서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


나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친정 부모님 댁이 있다. 사실 출산 전에는 친정이 가까운 장점을 잘 모르고 살았다. 평일에는 출퇴근하느라 바쁘고 주말이면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 바빠서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엄마, 아빠를 만나는 날이 잘 없었다. 출산 후에 친정이 가까운 것이 얼마나 좋은지 비로소 깨닫는다.




신생아 육아는 말 그대로 24시간 쉬는 시간이 없다. 잠도 물론 제대로 못 잔다. 잠귀가 예민한 나는 더욱 아기 옆에서 잠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 잠도 못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제 때 못 가는 좀비 상태로 신생아를 돌보다 보면 남편 퇴근시간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된다.


남편이 회식이나 야근으로 늦는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친정 부모님에게 SOS를 친다. 부모님도 일을 하시기 때문에 퇴근하고 식사 후 바로 우리 집으로 황혼 육아 출근을 했다.


우리 집 주방 창문으로 보면 바로 앞동 부모님 집의 거실 쪽이 보인다. 눕히기만 하면 우는 아기를 안고는 조그마한 주방 창문으로 부모님 집을 분단위로 염탐(?)했다. 거실 불이 꺼지는 순간이 바로 우리 집으로 온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부모님 아랫집 주민과 눈이 마주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스토커로 오해받기 십상이므로 빠르고 정확하게 부모님 집만 염탐하는 능력을 길렀다.


부모님 집 거실 불이 꺼지고 잠시만 더 기다리면 손주 육아를 위해 부모님이 오신다. 퇴근 후 피곤한 기색도 없이 아기를 보며 환하게 웃으신다. 게다가 딸내미를 위한 저녁반찬도 싸 오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엄마, 아빠는 손주 육아뿐만 아니라 장성한 딸내미 육아도 함께 하고 계신다.




아기 육아를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든 육아템을 사들일만한 돈? 아기를 돌볼 수 있는 시간? 산후도우미나 입주도우미 고용?

사실 모든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돈, 시간, 도우미의 역할을 조금씩 친정부모님이 해주신다. 친정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함과 동시에 마음의 편안함이 있다.


육아하는 초보엄마에게 친정은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그 언덕이 바로 코 앞에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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