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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May 08. 2024

커피 한잔의 바쁨

주말은 짧고 소중하다.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하면 딱 좋겠으나 아침부터 바쁘게 향한 곳은 소아과였다.


2주가 넘도록 아기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주말에 약이 부족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집 근처 소아과에서 토요일 오전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소아과는 매번 갈 때마다 붐빈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아기들이 이렇게 감기에 자주 걸리는지, 진료 대기가 이렇게 긴지 상상도 못 했다.


겨우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좀 늘어져서 쉬고 싶지만 할 일이 있다. 주말을 맞아 미루고 미루던 대청소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기가 있는 집은 대부분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다. 층간소음도 덜어주고 아기가 넘어져도 충격을 완화해 준다. 이 매트를 한 번씩 들어서 바닥청소를 싹 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전체 시공을 했으면 좋으련만, 아기가 커가면서 매트를 조금씩 채워 넣었더니 바닥에 테트리스를 한 모양새가 되었다.


매트를 싹 들어내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쓸고 닦았다. 그 와중에 아기가 자기도 하고 싶어서 밀대를 민다. 옛날 어른들이 애들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더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청소를 마치고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렸다. 소파에 기대어 있는 남편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가져다줬다. 그 순간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기가 눈을 번쩍이며 아빠에게로 달려든다.


아빠가 뭔가 먹는 걸 보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컵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직접 봐야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가끔씩 손도 푹 담근다.


남편은 한 손으로는 컵을 들고, 한 손으로는 아기를 방어하느라 바빴다. 그러더니 커피를 한 입 마시고는 감탄을 한다.


음~ 커피 한잔의 바쁨!



순간 커피를 마시다 뿜을 뻔했다. 커피를 사수하는 아빠와 온 힘을 다해 고사리 손을 뻗는 아기의 모습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보통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지만 육아할 때는 커피 한잔의 바쁨이 있다. 기는 피 한잔 마실 틈도 안주는 방해꾼이지만 귀여워서 용서가 된다.


귀여운 방해꾼과 재치 있는 남편의 콜라보로 한참을 웃었다. 앞으로 커피 마실 때마다 종종 떠오르며 이 순간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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