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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Oct 12. 2023

식빵 테두리 먹는 행복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면 거짓말

우리 집 13개월 아기는 집 밖에 나가는 걸 참 좋아한다. 집 안에서는 이미 서랍 구석구석 다 뒤져보았으니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 나서야 하나보다. 그런데 엄마는 초보운전에다 주변에 갈만한 곳이 없다는 핑계로 외출은 힘든 일이라고 여겼다. 주 2회 문화센터 수업을 가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아파트 단지 놀이터나 집 앞 편의점 방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선선한 가을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아기랑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처럼 '아파트 단지 밖은 위험해'라며 스스로 바운더리를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일 낮이라 그런지 차도 없고 한적한 김에 유모차를 끌고 나갔다.


딱히 목적지를 정한 건 아니었는데 아기랑 단 둘이 카페를 가자니 아기가 금방 싫증내면 테이크아웃해서 바로 나와야 할 것 같았다. 지도 검색으로 주변 맛집을 찾아보니 걸어서 10분 거리에 작은 빵집이 있었다. 게다가 유기농 베이커리! 엄마와 아기 둘 다 빵을 좋아하니 여기다 싶었다.


솔방솔방 유모차를 끌고 가다 보니 차가 다니는 골목길이 아닌 다른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지름길도 발견하고 아기는 지나가는 자전거, 사람, 자동차가 신기한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금세 빵집에 도착해서 유모차는 문 앞에 잠시 주차하고 아기를 안 들어갔다.


빵집 주인 부부는 아기에게 반갑게 인사했지만 낯가리는 아기는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평소 잘하는 손 흔들며 안녕안녕~ 하는 개인기는 보여주지 않았다. 아기랑 같이 먹을 우유식빵이랑 내가 다 먹을 달달한 빵을 골라 계산했다. 먹기 좋게 잘라주신다는 말에 커팅을 기다렸다. 빵을 들면 손이 없으니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면 가져다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기가 초코를 먹냐고 물어보셨는데 아직 못 먹는다고 했더니 그럼 엄마 꺼라며 초코칩이 콕콕 박힌 쿠키를 아기 손에 쥐어주셨다. 친절한 배려와 깜짝 선물에 감동해서 속으로 이 집 단골이 되리라 결심했다. 


쿠키를 득템 한 아기는 조물조물 만지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구 흔들다가 어디 흘리고 갈까 봐 유모차 가림막에 뚫린 바람구멍으로 잘 들고 있는지 지켜다.


집에 와서 아기랑 식빵을 먹었는데 아기는 씹는 연습 중이니까 보드라운 식빵 안쪽만 주고 테두리는 내가 먹는다. 아기 거 하나 내 거 하나 꺼냈는데 내 건 그냥 먹으면 되는데 습관적으로 테두리먼저 자르고 먹었다. 오물오물 맛있게 식빵을 먹는 아기를 보니 오늘 나갔다 오길 잘했다 싶었다.


어릴 땐 식빵 테두리는 맛이 없다며 남기곤 했는데 이제는 식빵 테두리부터 먹는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기분 좋은 행복이 쌓인다.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데 아직 나는 그런 경험은 없다. 육아를 하니 힘 들어서 전보다 배가 더 고프다. 다만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한 느낌이 든다. 시간이 흘러 육아만렙이 되면 아기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포만감이 느껴질 모르겠다.


잠깐의 외출로 산책도 하고 맛있는 빵집도 발견하며 일상의 활력을 찾은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 일상이지만 작은 변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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