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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Dec 04. 2023

음식에도 나이 제한이 있다

소화불량의 시작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난 대학생 시절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 생활의 좋은 점은 기숙사 식당에서 삼시 세 끼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누군가 시간 맞춰 영양 가득한 식사를 차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당시에는 몰랐었다.


어린이 입맛이던 대학생 시절엔 식당 메뉴를 보고 맛없는 메뉴(건강하고 몸에 좋은 음식)라고 생각되면 식당을 지나쳐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당시 꽂혀있던 라면이 불닭볶음면이었는데 가끔 치즈 맛, 카레 맛, 로제 맛 등 다른 맛에 도전하곤 했지만 역시 원조는 못 이긴다며 다시 원조 불닭볶음면을 고르곤 했다. 가끔씩 기숙사 친구와 치킨을 배달 주문해서 치킨에 불닭볶음면을 싸 먹는 특식을 즐기기도 했다.




불닭볶음면을 먹고 바로 누워자도 멀쩡하던 철통 같던 위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약해져 갔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아침밥도 거르고 공복에 마시던 모닝커피가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켰다. 그러다 임신을 한 뒤부터 그 증상이 더 악화되었다. 임신 초기에는 니글니글한 입덧으로 고생하다가 점점 배가 불러오면서 누워도 앉아도 서있어도 위액이 갑자기 올라왔다. 항상 속이 쓰라렸고 산부인과에서 위장약을 처방받아먹었다.


출산 후 모유수유를 하며 건강식을 먹어서 그런지 속이 점점 편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육아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지 갑자기 매운 불닭볶음면이 땡겼다. 오랜만의 특식이라 불닭볶음면에 치즈까지 얹어서 야무지게 먹으려던 바람과는 달리 한입 먹자마자 이건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안은 물론 위까지 따끔따끔한 느낌에 결국 절반도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불닭볶음면과 따끔따끔 불타오르는 위장이 대비되며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불닭볶음면을 못 먹는다는 슬픔 반, 먹을 수 있을 때 더 먹어둘 걸 하는 아쉬움 반의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식탁을 치웠다.


그 좋아하던 불닭볶음면에 치킨콤보였는데, 이제는 치킨도 많이 먹지 못한다. 예전에는 1인 1닭까지는 못했어도 몇 조각만 남기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었다면, 이제는 2~3조각 먹고 나면 물려버린다. 그냥 밥을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치킨값과 배달비가 아까워 몇 조각 더 먹으려 시도하지만 이제는 위장이 받아들이지 않는 시기가 왔다. 아직 입맛은 그대로인데 위장이 소화를 못 하다니...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입맛이 변하는구나.


음식에 소비기한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나이제한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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