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인사이동을 할 때면 책상 자리만 옮기는 것이 아니다. 부서 단체 카톡방에서도 자리를 옮겨야 한다. 새로운 부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샌가 단톡방에 초대가 되어있지만 예전 부서는 내 발로 아니 내 손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 어떻게 나가느냐도 중요하다. 인사이동 공지가 뜨자마자 카톡방에서 나가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 보이고 그렇다고 계속 놔두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때 예를들면 같이 이동하는 누군가가 그동안의 감사와 함께 작별 인사를 올릴 때 같이 나가곤 했다.
나에게 회사 단톡방은 눈엣가시였다. 주로 업무 관련 공지사항을 카톡방에 올리는데 심지어는 (그리 급한 일도 아닌데 굳이) 주말에도 올라온다. 가끔씩 업무랑 연관도 없는 걸 올리는 경우도 있어서 스팸메일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게다가 카톡방에서도 회사생활은 그대로 이어져서 윗사람이 한마디 하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다 보니 카톡은 금세 가득 차버렸다. 쌓여있는 안 읽은 카톡 수를 보는 내 심정은 베란다에 쌓여있는 분리수거 쓰레기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 왕모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왕 씨는 텔레그램으로 업무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 카톡방의 존재에 서로 다르게 놀랐다. 왕 씨는 회사 카톡방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나는 그런 게 없다는 것에 놀랐다. 대감집 노비는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이제 와서 대감집 노비가 되긴 글렀고 회사 카톡방을 피할 수 없으면 내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 했다.
채팅방 잠금
채팅방을 착각해서 말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회사 카톡방은 채팅방 잠금기능을 설정하고입력창을 닫아두었다.
카톡 알림 끄기
저녁이고 주말이고 울려대는 회사 카톡방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업무시간 외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위해 카톡 알림 끄기 기능을 설정해 놓았다.
채팅방 고정
항상 바쁜 회사 카톡방은 가만히 두면 채팅방 목록에서 항상 맨 위를 차지할 것이다. 가족과 친구 카톡방을 맨 위로 고정해 놓으면 회사 카톡방과 영영 다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드디어 회사 카톡방을 탈출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었고 출산휴가 전 정식 출근 마지막날 감사의 인사를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카톡방 나가기를 눌렀다.
카톡방이 이렇게 평화롭고 조용할 수 있다는 걸 입사 후 5년 만에 처음 알았다. 평화로운 출산휴가를 보내고 출산예정일 3일 전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병원에서 2박 3일 입원 후 신생아를 데리고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직장동료에게서안부 카톡이 왔다. 동료에게 출산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카톡이 끊임없이 울려댔다.
동료가 나를회사카톡방에 다시 초대하고나의 출산소식을 알리며 축하해 달라는 카톡을 올린 것이었다. 부서장님을 포함한 직원들 모두가 한 마디씩 축하를 해주는 상황이 펼쳐졌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렇게 모두의 축하를 바란 건 아니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올린 후 카톡방에 어정쩡하게 남아있게 되었고 얼마 안 가서카톡방은 업무 관련 내용으로 다시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갈 타이밍을 놓친 나는 며칠 지켜보다가 카톡방 나가기를 눌렀다.
'ㅇㅇㅇ님이 나갔습니다.'라는문구를 남기고 카톡방을 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카톡방 조용히 나가기'라는 기능이 새로 생겼다고 한다. 이 기능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카톡이용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모두들 한 번씩은 카톡방 나가기에 고충이 있었나 보다. 지금도 회사 카톡방에 갇혀있는 회사원들의 조용한 방탈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