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임산부가 나오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나는 갑자기 우웁! 하는 소리와 함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입덧을 참거나, 깜깜한 밤중에 갑자기 무언가 먹고 싶다며 남편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막상 내가 임신을 해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1. 입덧
다행히도 나는 입덧을 짧게 한 편이었다. 그런데 입덧이 심할 때는 우웁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게 소용없을 정도였다. 한 번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갑자기 차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면서 멀미하는 느낌과 동시에 차 뒷좌석에 토를 해버렸다. 이후로도 며칠 동안은 무언가 먹고 바로 토하고를 반복했다. 언제 갑자기 올라올지 몰라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다시 떠올려도 속이 울렁대는 것 같다.
2. 음식
임신하면 아기가 원하고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마구 떠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임신 초기 에는 입덧으로 먹지 못하고, 배가 불러올수록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져 잘 먹지 못했다.
임신하고 가장 많이 찾은 것은 의외로 아이스크림과 얼음이었다. 속이 항상 안 좋아서 그런지 차가운 게 당겼다. 울렁울렁, 따끔따끔한 속을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달랬다. 인생에서 아이스크림을 가장 많이 먹은 시기가 초등학생 때도 아닌 임신했을 때일 줄이야. 아이스크림이 몸에 좋을 리가 없기에 아이스크림을 대신해서 얼음을 먹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아기를 출산 후에는 다시 아이스크림 생각이 안 났다.
임신하면 어쩔 수 없이 살이 많이 찔 거라고 생각했다. 20kg 넘게 체중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어 약간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임신 중 항상 속이 안 좋아서 그다지 많이 먹지는 않았고 임신 전과 비교하여 만삭 때까지 대략 10kg 정도 체중이 늘었다. 아기와 양수 무게 등을 빼면 살이 별로 안 찐 것이다. 거울로 내 모습을 봐도 팔다리는 그대 론데 배만 볼록 나와있어 말 그대로 E.T를 보는 것 같았다.
출산 직후에는 몸무게가 거의 줄지 않고 배도 쏙 들어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신생아 육아를 하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싸지도 못하다 보면 금세 피폐한 몰골로 변한다. 살을 뺄 생각도 없었는데 체력과 함께 살도 저절로 빠진다.
시간이 흘러 아기가 클수록 포동포동해지고 덩달아 엄마도 포동포동해진다. 이렇게 하루종일 체력이 탈탈 털리는데 왜 살이 찔까 억울했다. 밥도 맘껏 먹을 수가 없는데! 돌아보니 애 먹이느라 내 밥은 배불리 못 먹지만 대신 떨어지는 당을 채우려 주전부리와 각종 액상과당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퇴근하고 저녁을 같이 먹으면 보상심리로 저녁마다 과식을 했다. 물론 운동을 안 한지 오래다.
어느 날 옆구리에서 잉여로운 뱃살이 느껴졌다. 뱃살은 원래도 있었지만 전보다 말랑한 게 100% 지방 덩어리였다. 임신했을 때도 안 찌던 살이 육아를 하면서 더 찌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일단 당 떨어진다는 핑계로 매일 마시던 달달한 커피부터 끊어야겠다.